우선 칙릿소설의 주된 골격은 대도시에 혼자 사는 2,30대의 직장 여성,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된 전문직 여성이 일과 사랑 속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과정이다. 결혼은 이들에게 당장 필요치 않은 것이요, 술과 섹스, 그리고 명품이 빠지면 칙릿소설 답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늦은 밤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떠는 듯한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다. 직장과 사랑에서의 갈등과 작가의 유머가 적절히 조합된다.
90년대 중반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출발로 하는 칙릿소설은 이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나 ‘섹스 앤 더 시티’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달콤한 나의 도시’와 ‘걸프렌즈’, ‘스타일’, 그리고 최근 나온 ‘무비스타 왕조현’에 이르기 까지 한국형 칙릿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최근 패션잡지 기자 출신 신예작가 백영옥 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스타일’이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칙릿은 이제 초창기 페미니즘에서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얼어붙은 경제상황 속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칙릿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문학계를 포함해 연극과 영화, 콘서트 등 대중문화의 전반적 기류로 보고 있다.
친한 친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듯 소설 속에 빠져들다 보면 젊은 여성들은 평소 꿈꿔왔던 자신만의 판타지와 주인공을 대비해 상상하게 되고, 이는 결국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판타지를 그려내도록 하는 일종의 대리만족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칙릿소설이 급성장하면서 불황 타개의 한 코드로 성장하고 있지만 너무 가볍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문학상에 칙릿소설이 등장하자 일각에서는 ‘문학상의 이미지를 통해 대중소설인 칙릿소설의 가벼움을 덮으려 하는 상품화 전략’이라며 칙릿소설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프라다’로 대변되는 칙릿소설의 정형화된 도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 속에서도 칙릿소설이 꾸준한 인기를 끄는 것을 볼 때 머지않아 작가만의 영역과 문학성, 대중성,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이 탄생해 한국 소설계의 영역을 확장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강순욱 기자 k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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