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살인 순혁이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80살 할아버지, 74살 할머니와 사는데 비 오는 날 자신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려다 넘어져 다친 할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늘 가방 한쪽에 우산을 넣고 다닌다.
그나마 지난 연말 순혁이 이야기가 한 신문에 보도되면서 유성구청으로부터 작고 가벼운 우산을 선물 받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향하는 순혁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웅크린 채 천천히 걷는다.
“아빠,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엄마, 아빠가 함께 모여 사는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에요.”
부모의 이혼으로 세 살 때 할머니 집에 맡겨진 순혁이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할머니 일을 거들어 드리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속 깊은 아이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가정을 이뤄 살고 싶다고 말해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할머니 강월순 씨는 “한 후원기관에서 순혁이에게 보내주는 제주도여행에 할머니를 대신 보내고 싶어 하는 착한 아이”라며 “순혁이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라도 살아야하는데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 달 50여만 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사는 순혁이네는 당장 설을 맞아 가래떡 한말 뽑을 여유도 없다.
세 식구가 생활하는 방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던 할머니는 “그래도 순혁이가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니 희망은 있다”며 “엄마, 아빠가 어딘가에 살고 있으니 가정을 갖고 싶다는 순혁이의 꿈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희미하게 웃었다.
순혁이가 다니는 예산 신양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30명인데 이중 순혁이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조손가정과 한 부모 가정이 28%를 차지한다.
신양초교 한규복 교장은 “순혁이 외에도 할아버지 혼자 삼형제를 키우는 등 결손가정이 많다보니 부모와 함께하는 학교행사를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아이들이 혹여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싶어 훈화시간에 ‘부모’라는 말을 사용하는데도 주의를 기울일 정도”라고 걱정했다.
한편 순혁이 소식을 들은 진동규 유성구청장과 김영기 대전지방경찰청 전·의경 인권강사(바르게살기운동 대전시협의회 부회장)는 우산, 축구공, 학용품, 생활용품 등을 본보 취재팀을 통해 순혁이에게 전달했다.
진 청장은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만할 게 아니라 이런 때일수록 더욱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보듬어야한다”며 순혁이에게 “기죽지 말고 씩씩하게 잘 자라 달라”고 당부했다./임연희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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