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감에 빛나는 가사네이로메의 12벌, 그걸로 모자라 20벌이나 겹쳐 입었다니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모노에 겹쳐 입기(layered look·레이어드룩) 형식이 왜 발달했는가는 어릴 적 친구 집이 웃풍 심한 일본식 가옥이라서 잘 이해한다. 집안에 주로 머물던 여자들이 매운 겨울을 견디려다 보니 보온에 유리한 껴입는 복식으로 자리잡았을 것 같다.
그렇게 실용성을 챙기는 한편 장식적 요소를 가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겹쳐 입기의 진수를 진짜 보여준 것은 한복 쪽이다. 우리 옷의 특징 자체가 입고 또 입는 중복에 있다. 저고리도 겉저고리와 안저고리, 치마도 속치마와 겉치마로 구성된다. 속옷을 겹겹이 잘 받쳐 입기로 말하면 기모노가 감히 따르지 못한다.
이에 대해 정조(貞操) 의식을 확고히 다지려 했다는 해석을 붙일 수도 있겠다. 고쟁이를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건 다 보인다는 말이 있거니와 한복의 매력은 잠금이 아니라 서로 합치는 여밈이다. 꽉 막힌 듯해도 옷고름을 풀거나 치마 하나만 들추면 내부로 통한다. 기모노를 놓고도 성적 오해가 분분한데, 벗으면 알몸이라거나 장식용 매듭인 오타이코가 유사시 베개나 허리받침용이라는 것은 거의 편견이다.
여자의 옷이 남자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면 거짓말이나 사기에 가까울 것이다. 기생들이 속곳을 치마 밑으로 조금 내보이고 저고리 길이를 일부러 짧게 해서 치마허리를 노출시킨 것도 다 남자를 의식한 연출이다. 현대의 요정식 룸살롱에서 치마와 어우린 미끈한 다리는 미니스커트보다 자극적이라 한다. 정통 한복도, 바쁘고 경황없을 때 치마폭의 절제된 곡선미가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올 때가 있다.
한복은 숨김의 옷이긴 하나 막음의 옷이 아니다. 그렇다고 확 드러낸 옷은 아니다. K-1 격투기 무대에서 라운드걸이 과도하게 드러난 한복을 선보여 ‘좋다 싫다’ 논쟁을 벌인 일이 있다. 한복이 섹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더라도 어우동 풍, 음기 충만한 변강쇠마을 아낙 풍의 퓨전 한복만이 남는다면 어떨까? 품위가 죽고 사람을 호리는 요염과 속됨만이 남은 옷을 과연 한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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