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칼집 속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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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칼집 속의 칼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1-22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생리하는 필리핀인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욕심을 채운 남편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40대 남성, 대전지역 인기기사’로 포털이 분석하고 있는 기사다. 이불 밑 은밀한 폭력, 부부간 강간죄에 대한 설문은 지금도 계속된다. 환영한다는 사람, 어이없어 자다가 웃었다는 사람…. 칼과 칼집의 관계를 돌아본다.


‘질’을 뜻하는 ‘버자이너(vagina)’의 16세기 중반 이전 원뜻은 ‘칼집’이다. 칼집같이 생긴 잎집이 남성을 감싸서 붙여진 이름일 터. 한자 ‘질(膣)’에는 ‘실(室)’이 들어 있다. 집이요, 방이다. 남자의 칼, 칼이 머무는 공간 개념을 갖는 칼집, 이 유서 깊은 자웅 교역의 장에 특수강간죄라면 부부를 자가용 승용차 보듯 하는 정서상 마뜩찮고 누군가는 이러다 잠자리 인증제라도 나올까봐 의기소침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민법상 동거의 의무(법 826조)를 성적인 의무방어전에 대한 규정이라 해석한다. 즉 칼과 칼집, 열쇠와 열쇠구멍 같은 관계를 규정한 것이다. 40대의 마르틴 루터는 1주 2회는 남편의 의무, 1년 104회를 어느 여자나 만족하는 수치로 제시했다. 법조문 어디에도 칼과 칼집의 적정 만남 횟수를 명문화한 규정은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칼이 있음에 칼집이 있다. 칼을 제대로 쓰자면 칼집이 있어야 한다. 성적 파트너인 부부에 성적 파트너십이 사라진다면 테이프를 원점으로 돌려봐야 할 중대 사안이다. 더 힘센, 칼자루를 쥔 수컷이 더 폭력적이다. 그러면서도 성을 매개로 하는 주도권 싸움에서 남자는 종종 불리하다. 그리스에서도 남자들이 ‘칼집’을 버려두고 전쟁만 일삼자 여자들이 섹스 스트라이크를 했을 때, 남자들은 항복했다.

연구에 따르면 정자 생산은 칼이 칼집을, 칼집이 칼을 멀리할수록 활발하다. 칼을 휘두르는 남자에겐 자식을 번식하려는 이기적인 유전자인 강간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여자의 강간 회피 메커니즘은 아버지 없이 키울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배려다. 그렇다고 강간을 적응이 만들어낸 자연 선택으로 합리화하지는 말자.

강간을 물리법칙이라거나 양자역학적 우연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름없는 노릇일 테니까. 이번 판결은 따라서 칼집에 대한 일종의 햇볕정책 성격이 짙다. 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성적강요죄 신설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혼인신고서가 아내를 강간하는 자격증은 아닌 것이다. 단, 지나친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나 이혼과 재산 분할 등에 오·남용된다면 칼과 칼집에 불행이다.

단단한 칼이 칼집에 들어가면 이내 얌전해진다. 우리 몸에 내장된 치유 프로그램이 그렇다. 사랑(amor)은 발음해보면 배고파 젖을 빠는 입 모양에 가깝다. 유방(mamma), 젖꼭지(amma, mamilla)와 계열이 같다. 넥타이 구실이나 하는 칼은 칼집에서 녹슨다. 칼집 밖에서 따로 노는 칼은 처절하다. 어떤 부부는 1년에 칼을 세 번밖에 안 썼다고 법정에 선다. 딜레마의 반복이다.

성관계에 영원히 동의하는 계약이 결혼이지만(미래학자들은 결혼이 인간 본성에 역행하므로 사라질 제도라고 예언하지만), 폭행과 강제까지 동의한 건 아니다. 남편 L씨는 지명방어에 소홀한 부인 책임으로 돌리지만 내장한 ‘칼’만이 아닌, 과일 깎는 칼이 등장, 문제가 달라졌다. 칼집과 칼의 건강한 관계 회복을 바라며 호사의 소외지대, 성욕의 자투리땅을 더듬어봤다. 칼과 칼집을 잘 쓰자는 취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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