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경 건양대학교 기업정보관리학과 교수 |
국어사전에 따르면 연하장(年賀狀)의 의미는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연말연시에 보내는 간단한 글이나 그림이 담긴 서장(書狀)’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새해가 되면 부모·스승·친지 등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그렇지 못하면 형편이 되는 집에서는 아랫사람을 시켜 문안의 서찰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 우편법이 제정되고 엽서가 발행되면서부터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게 발전하여 매년 연말에는 우체국에서 연하장을 취급하는 연하우편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새해의 희망과 다복함을 상징하는 그림과 함께 덕담을 써넣은 아름다운 연하장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직접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덜게 되었다. 컴퓨터와 함께 통신수단이 발전하면서 더 빠르고 편한 것을 원하던 사람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만들었고, 이것이 생활화되어 이제 새해 인사까지도 더욱 쉽고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휴대전화 문자나 컴퓨터 이메일을 이용하면 연하장을 고르고 주소를 써넣고 우체국을 찾아가는 수고와 귀찮음을 덜 수 있음은 물론, 게다가 이메일은 요금마저 들지 않으니 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그러나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해지는 동안 우리는 연하장이 가진 본래의 아름다운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소중한 사람의 안부를 묻고 행운과 안녕을 빌어주던 연하장은, 전자 연하장이 등장하면서 단순히 잊혀진 자신의 존재를 잠시 상대방에게 상기시키는 역할밖에 못 하게 된 것이다. 직접 연하장을 고르고 손수 마음을 담아 인사말을 써서 보냈을 때의 그 흐뭇함, 나의 소식을 묻고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는 정성어린 연하장을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은 이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 공허함과 씁쓸함이 밀려온다.
나에겐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매년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깨끗한 한지(韓紙)로 직접 만든 연하장을 보내주시는 노(老) 화백(畵伯)이 한 분 계시다. 첫 직장에서 만난 그분은 미술을 전공한 온화한 성품의 멋쟁이셨는데, 작품 활동에 전념하려고 회사를 떠나신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어렵게 연락이 닿았던 분이다.
당신이 직접 판화로 그려서 한지에 찍은 십이지(十二支) 동물 그림과 함께 정성껏 붓으로 써넣는 인사말에는 나의 건강, 가정의 행복, 직장의 발전을 빌어주는 글귀가 소중하게 담겨 있다. 그림과 글씨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직접 연하장을 만들 수 없으니, 매년 미안한 마음과 함께 기성품 연하장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속의 새해 인사말만큼은 꼭 자필로 정성껏 써서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있다.
새해 첫날 아침,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인사차 집에 온 아들의 휴대전화가 쉴 사이 없이 울려댄다. 녀석은 어제 자신이 아는 300여 명에게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새해 인사장를 보냈단다. 그중에 160통 정도는 이미 답장을 받았고 그리고 지금도 계속 답장이 오고 있다며 좋아하고 있다. 우쭐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대견스럽다기보다는 과연 진심이 담겨 오래오래 기억될 연하장은 몇 통이나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며칠 후면 다시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이 돌아온다. 미처 새해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소중한 분들을 찾아 직접 수고하여 쓴 연하장을 정성껏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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