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그간 짐작에 머물렀던 미륵사와 미륵사지석탑의 창건시기와 내력 등을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어 향후 백제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 금제 사리 봉안기 |
사리장엄구는 무왕 왕후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발굴된 유물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리를 보관했던 금제 사리호와 당시 발원문을 담은 금제 사리봉안기.
금제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에 음각과 주칠로 드러난 194자의 문자가 기록돼 있다.
사리봉안기에 기록된 문자에 따르면 미륵사는 전해져오는 설화처럼 백제 제30대 무왕(武王.600~641)의 재위기간 중인 기해년(己亥年.639년)에 왕후가 창건했다.
하지만 무왕과 왕비인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善花)공주가 같이 사찰을 중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는 삼국유사와는 달리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왕비가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佐平)의 따님’이었다고 기록돼있다.
▲ 금제 사리호?? |
이와 함께 관심을 모은 금제 사리호는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모양으로 뚜껑과 상부, 하부의 3단 구조로 내함과 외함으로 제작됐으며, 표면에서는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이 드러나 당시 화려했던 백제 금속공예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사리장엄 500여 점이 완벽한 보존 상태로 일괄 출토된 것은 아주 드문 일로 백제 문화 연구에 지평을 열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국보급 유물이 1400년 세월 동안 훼손 없이 발견된 것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백제시대의 사리장엄구 발굴은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발굴한 창왕(昌王) 시대(577년)의 것 이후 두 번째다./익산=강순욱 기자 ksw@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