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의 거리를 생각한다. 7시 반이던 출근시간을 늦추니 월요일마다 차가 막힌다. 교통량 증가 때문이 아니다. 막힐 거라 생각하고 모두들 서두르는 바람에 막힌 것이다. 장타가 나오면 야구장 관중이 일어선다. 편히 앉아도 될 일을 앞에서 일어서니 뒤에서 고개를 빼고 일어선다. 무슨 시대정신의 공유라도 된다는 듯 시민문고를 너도나도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문고가 텅 비어버렸다.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근 10만권 중 1만권이 채 남지 않은 시민문고. 쓸 만한 90%가 사라졌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찮은 것이라는 B. 디즈레일리에 의심을 품으며 서대전네거리역에서 내렸다. 벼랑 같은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간댕간댕 세워진 서가가 우암 송시열의 암서재(巖棲齋)를 연상케 한다.
역시 ‘무엇을’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책 도둑은 도둑 아니라는 말은 훔친 책으로 성공했다는 얘기가 신문에 실리던 시절의 미담이다. 초기 로마 도서관의 책들, 키케로가 드나들던 아펠리콘 도서관, 왕립 마케도니아 도서관도 그리스에서 강탈해간 책들로 채워졌다. 도서관의 역사는 책 도둑의 역사와 일치한다.
모든 권리장전의 ABC가 그걸 행사하지 않을 권리부터 비롯된다. 책을 억지로라도 읽히겠다는 법률(독서문화진흥법)이 생긴 마당이지만, 읽지 않을 자유까지 보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문고의 장점은 책과의 동맹을 강요함이 없이 계량화된 실적 본위에 빠지지 않는 데 있었다.
그러나 책 먹는 시민들은 지하철문고의 ‘쿨’한 뒤통수를 직격했다. 공공에게 개방하고 자료에 직접 접근하게 한다는 대전도시철도공사의 ‘사서정신(司書精神)’을 배반했다. 얼마 남지 않은 책이 승강장에서 역무실 쪽 대합실로 옮겨진 순간, 자유로운 접근성에서 멀어졌다. 사실상 퇴출이다.
시장 원리는 선택의 원리다. 물건값이 싼 것은 언젠가 비싸질 조짐이며 비싸면 싸질 조짐이다. 텅 빈 문고가 다음에 꽉꽉 차고 넘칠 징조임을 믿는다. 외환 위기 때의 키워드가 ‘아버지’였다면 지금의 키워드는 ‘어머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불황을 이기자. 이럴 때는 자신에게도 투자해야 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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