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이상묵.
그는 어깨 아래를 전혀 쓸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그리고 서울대 교수다. 언론들은 그의 이름 앞에 ‘한국의 스티븐 호킹’, ‘강단에 선 슈퍼맨’ 등의 수식어를 붙였다. 다음 날부터 그의 연구실은 각 미디어에서 파견된 취재진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리고 3월 19일,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이상묵 교수의 사연을 크게 다루었다. 같은 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도 장애인의 귀감이 된 그의 이야기를 실었다.
현재 이상묵 교수는 두 가지 삶을 살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과학자로서의 삶이다. 그는 IT기술과 보조공학기기를 통해 세상과 폭넓게 소통하며 여전히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친다.
언론의 관심이 많이 사그라진 지금, 이상묵 교수는 여느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아 주기를 원한다. 보조공학기기와 IT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삶을 살 수 있고, 직업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단지 조금 느리고 불편할 뿐이다. 이상묵 교수는 많은 장애인들과 만나기를 원한다. 지난 2년 동안 장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지식과 경험을 전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44년 동안 정상인으로 살아 봤으니, 나머지 인생은 조금 다르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상묵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시절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대 자연과학대를 입학했지만,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수재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본인의 말로는 천신만고 끝에 1년 재수해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물리학을 선호했지만, 자신은 성적도 좋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해양학과를 선택했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말레이시아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다닐 때 국제학교였던 관계로 영어를 마스터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서울대가 공동으로 진행한 야외 지질연구의 마지막 코스였던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향하던 중 사막 한가운데에서 차가 전복되었다. 이 사고로 이상묵 교수는 네 번째 척추가 완전 손상되어 전신이 마비되었다.
그는 한 순간 운명을 원망했다. 하지만 몸이 마비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오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랬기에 아직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또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무게에도 못 미치는 실낱같은 희망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
이 책 〈0.1그램의 희망〉은 자신의 꿈을 이룬 한 과학자의 일대기이자, 삶을 승리로 이끈 한 위대한 인간의 기록이다. 이 책 속에는 청소년 시절에 품었던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간 위대한 과학자의 족적과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숭고한 여정이 담겨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 속에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자신이 품은 꿈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세계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분야에서 1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에서는 청소년 세대들이 꿈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또한 한 순간의 좌절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작가의 독백 중에 심금을 울리는 대목이 있어 소개드린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인이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때면 욕창을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 내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몸을 뒤로 누이면 사람들은 일순 입을 다물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당신의 대화 내용이 재미없어서 눕는 것이 아니니 양해해주세요.”
이럴 때 가벼운 웃음은 필수다. 가끔씩 내가 뒤로 눕는 것을 보고 뒤로 넘어지는 것으로 착각한 행인들이 깜짝 놀라기도 한다.
30분에 한번 씩 자세를 바꾸는 것, 이것은 생존을 위해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해야 할 일이다. 아프거나 불편하다는 느낌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동타이머처럼 그냥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현실은 이렇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오대양을 누비며 역동적으로 연구 활동을 펼쳤다. 사고 자체는 불행했지만 나는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사고를 통해 장애를 입었지만, 다시 재기해 활동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은 하늘이 가져가지 않았다고, 횡경막만을 이용해서라도 정상인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만 보아도 나는 큰 행운아다.
위기의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하늘이 내린 행운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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