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세상과 로그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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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세상과 로그인하기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1-09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먼저 로그인을 하시고, 이용해 주세요.” 요구에 따라 로그인을 한다. ‘속개모니’란 단어가 궁금하여 들어가니 뜻이 기발하다. ‘속은 개나 다름없으면서 겉은 부처로 위장되어 있는 사람.’ 이 단어가 오프라인으로 옮겨가 펄프 사전에 실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재미는 있다.


접속, 사용 개시를 뜻하는 로그인만 거치면 술집과 회사에서 만난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온라인에서 만난다. 직접 대면에 비해 개방적일 수 있는 대화를 하고 사이버 로맨스를 나눈다. 귀찮아지면 헤어진다.

아침 신문을 보니 상징적인 제목의 행사가 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이 내일(10일) 금강하구 일대에서 갖는 ‘철새와 함께 자연에 로그인하기’ 행사가 그것이다. 하늘과 바다에 ‘로그인’하고 들어가 직접 가슴을 트고 ‘채팅’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작 실생활 속 로그인에 서투르거나 컴퓨터 없이는 한발짝도 세상과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겨냥한 체험행사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상을 향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까먹고 살았다. 자연과 맞닿아 대화하길 거부하고 초고속 정보의 바다에서 가창오리와 고니를 만난다. 지식으로 가는 고도의 훈련 과정은 삭제되고 지식의 개념마저 흔들리고 있다. 밤새 캐낸 지식이 조잡한 신지식의 이름으로 마구 떠다니는 걸 보면 맥빠진다.

사랑도 바뀌고 있다. 인류가 한정된 파트너와 성적 합일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것이 성적 충동, 좋은 파트너에게 구애 에너지를 집중토록 한 것이 낭만적 사랑, 남녀 함께 유아기 아이를 돌보게끔 진화한 것이 애정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로그인을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행위가 성폭행이고 성추행이다. 여성의 변덕스러운 오르가슴은, 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바치는 남성 식별용 적응 기제라는 점. 따라서 손님이나 준회원이 정회원 시늉을 하면 금세 탄로가 난다.

불안한 항해는 사고를 자초한다. 태안 유조선 사고의 본질 역시 항해규칙 위반이었다. 아이들 머리맡에 놓아둘 인생 항해 규칙을 찾아낸 것도 그래서다. 물살의 흐름에 맡기고 당황하지 말라. 바위를 의지하라. 소용돌이에 빠지면 발을 먼저 밖으로 내밀어라. 최악의 상황에선 때로 잠시 그대로 두라. 위험이 있어 내가 여기 있다.

로그인을 통한 정보다발만으로 만날 수 없는 것도 많다. 부활절 달걀도 없고 옥토끼도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신화나 전설이 없다면 사이버 쓰레기와 정보시체 사이에서 따뜻한 시스템들은 로그아웃되지 않을까. 어떻게 늑대였던 우리가 시민이 되었을까, 라는 홉스 식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접근하는 오프라인 세상에는 가지런한 항해규칙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연초에 자주 하게 된다.

금강변의 철새를 보려면 먼저 그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공명을 통해, 이해란 그 상대방과 같은 마음으로 바라봄임을 배워야 한다. 철새와의 로그인을 통해 알아야 할 오만 가지 지혜도 이런 것들이리라. 나침반도 없고 돛도 꺾이고 해킹 위험이 상존해도 세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로그인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디와 비번을 넣어 엔터키 치고 다시 항해일지를 써야 하리라.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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