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원트 노바디 노바디 벗츄(I want nobody nobody but You)
난 다른 사람은 싫어 니가 아니면 싫어
I want nobody nobody nobody no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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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노바디의 답가(答歌) ‘애니바디’가 나온다. 사랑을 떠나 보내는 남자의 아픈 마음이 랩으로 포장돼 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겠지만, 애니바디(누구든지, 누군가)의 의미가 전보다 확장된 긍정이어서 좋았다.
아이 원트 노바디 노바디 벗츄(I want nobody nobody but you)
애니바디 애니바디 벗 미(Anybody anybody but me)
가사가 ‘노바디’에서 ‘애니바디’로 이행하는 동안, 우리에게 공통된 타자,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귀속될 수 없는 그 누군가를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지 못하게 하는 막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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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자신의 직관을 존중하며 무늬와 결까지 보자는, 지난 여섯달 간 수행을 끝내고 다시 층을 옮겨 이사한다. 소음 같은 음악이, 박자와 곡조로 세련된 거친 소리에 불과한 것(T. 풀러)에서 인류가 갖는 가장 보편적인 리듬의 언어(롱펠로우)로 바꿔 탄 순간에 떠나려니 아쉽다. 무엇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을 대상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작은 깨달음은 남겨두고 간다.
지난 연말, 나에게도 너에게도 고유하지 않은 생명의 익명적 태동에 눈뜰 무렵, ‘노바디’가 한겨레21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타자에 대한 부정보다 나 자신에 대한 상실감을 강조한 선정이 아닌가 한다.
배신당할까 의심하고 못 미더워 다가가지 못하고 천일야화 속 술탄처럼 가까운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편집증적이고 망상적인 사람들. 그 누군가가 누군가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고독이 스며들고 사랑에 빠지면 역설적이게도 섬 같은 고독이 동반된다. 아무것도 아닌 무명인 ‘노바디’에서 누군가(somebody), 누군가 딴 사람(someone else), 누군가 적당한 사람(some suitable person). 상실감을 접고 진실로 나도 여러분도 그런 주인공으로 살기를 기도하며, 또 특정한 누군가 ‘썸바디’를 기다리며 삼가 한 해를 연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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