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가 <본질과 현상>이라는 계간지에 장편을 게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마지막 유작으로 <신화의 시대>가 출간되면서 2008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청준님의 넋을 기리면서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도록 만들었다.
<본질과 현상>이라는 잡지의 편집인 겸 발행인인 소설가 현길언 선생은 <신화의 시대>가 극적으로 출간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힌다.
<본질과 현상>이라는 계간지를 만들고 싶으니 이름을 빌려달라는 말에 이청준선생은 흔쾌히 수락해 주었고, 이청준 선생의 이름을 빌어 2~3명의 이름을 더해 <본질과 현상>이라는 계간지를 창간했고, 그 이후 잡지의 문학 면에 ‘성장소설’을 집중 게재하려는데 작품 하나를 받고 싶다고 청탁하자 이청준 선생은 지금 일정상 새로운 작품을 쓸수가 없다며 그 동안 써둔 이 소설을 꺼내어 “이것도 성장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메일로 보내와 『본질과 현상』에 4회(2006년 겨울호-2007년 가을호)로 나누어 분재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작가의 마지막 소설집 출간과 더불어 와병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다른 작품을 펴내려는 출판사들의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마와의 싸움에 들어간 작가의 상황을 고려하고 상업적인 이용을 염려한 잡지와 유족 측이 장편의 존재를 덮어두면서, 이 작품은 잠을 자듯이 조용히 숨어 있었다. 그래서 이청준의 마지막 장편소설 출간 소식은 놀랍고 반가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작가는 생전에 어느 대담에서 “소설은 독자와의 싸움이고 게임이며, 결국 소설가는 끝까지 자기의 패를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고 말한 바 있어, 이 소설의 출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로 일컬어지는 이청준 선생이 독자와 세상을 향해 마지막 펼쳐 보인 패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 소설은 긴 소설을 쓰지 않던 작가가 이례적으로 길게 구상했던 미완의 큰 소설의 1부이자, 작가가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다 생애 말년에 와서야 혼신을 다해 풀어내려 했던 자신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고 이청준님은 1939년 전남 장흥 출생이고, 1965년 <사상계>에 [퇴원]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무려 43년 동안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1972년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컬트 감독으로 추앙받는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그리고 맹인 목사 안요한의 일대기를 그린 ‘낮은데로 임하소서’ 그리고 199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 ‘축제’ , ‘천년학’ 그리고 칸영화제 수상작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 마지막으로 2008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던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등이 모두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들이다.
알려진 바로는 생전에 작가는 『신화의 시대』를 3부작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그런 전체 구도로 보자면 이 소설은 미완의 작품이다. 그러나 단순히 ‘미완성’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3부작의 각 권이 저마다 다른 특성으로 완결되고 그것이 다시 서로 이어져 하나의 큰 그림이 되게끔 구조화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 때문이다.
이 장편소설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선바위골 사람’은 작가의 선조들이 터하고 산 고향으로 ‘자두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2장 ‘역마살 가계’는 작가의 조부로 짐작되는 이인영 집안의 가계 내력을 짚어주며 그가 고향 선바위골을 떠나 일가를 이루고 외지에서 살다가 죽어 유골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그렸고, 끝으로 3장 ‘외동댁과 약산댁’은 작가 이청준의 어머니로 보이는 외동댁과 향후 작품의 주인공으로 파란과 비극의 짧은 삶을 살다갈 신화적 인물 태산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출향 이야기로 아로새겨져 있다.
1장과 2장의 이야기가 3장에서 하나로 만나는데, 특히 2장에 등장하는 역마살이 낀 떠돌이 의사 이인영의 가계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소설가로 입신하여 사후에야 고향에 영면하게 된 작가 이청준 자신의 삶을 유비적으로 보여주는 특이한 액자 구조여서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1910년부터 1932년까지로 한정되나, 이인영의 이야기가 1910년을 기점으로 과거로 30년을 거슬러 올라간 전 세기 구한말 고종 연간이라는 점에서 1880년대로까지 연대가 소급되고, 오늘날로부터는 백년도 훨씬 이전의 작가 집안의 일까지 소상히 그려진다.
“조선조 국권을 통째로 강탈당한 1910년대가 저물어가던 어느 해 이른 봄, 갈수록 노골화하기 시작한 일제의 수탈정책에 유례없는 기근까지 덮쳐들어 근동의 인심이 매우 흉흉하던 남녘의 해변마을 선바위골(立岩里)에, 하루는 정신이 썩 온전치 못한 데다 본색이 아리송한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이렇게 시작되는 첫머리의 ‘본색이 아리송한 여자’가 바로 ‘자두리’다. 그러나 이 명칭은 이름인지 출신인지 분명하지 않고 다만 그녀의 입에서 줄곧 ‘자두리’란 말만 흘러나왔기에 붙여진 것. 그 자두리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선바위골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1장의 주된 이야기다.
그 무렵 선바위골에선 사람들에 의해 큰산으로 불리는 천관산에 올라가 돌탑을 쌓는 세시행사 같은 것이 있었다. 일제의 억압에도 탑쌓기는 몰래 지속되었고, 추석 명절 어간에 동네 남정네 여섯은 적게 무리지어 그 큰산으로 탑을 쌓으러 떠난다. 그들이 산에서 돌아오자 그와 때를 같이해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자두리도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어쩐지 예전과 다른 행투다! 마을의 품앗이 일꾼으로 밥 비렁질 하던 자두리, 아이들의 놀림감 미친년 자두리의 배가 불러오면서 영영 숨겨질 것만 같았던 천관산에서의 일(여섯 남정네들의 윤간)이 하나씩 드러나고, 마침내 자두리가 낳을 아기가 누구 얼굴을 탁해 나올 것인지, 과연 자두리 뱃속에 누구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 온 마을사람들의 기대 아닌 기대 속에서 떠돌이 여자는 차곡차곡 달수를 채워간다. 그러나 정작 산달은 맞은 자두리는 어느날 또다시 홀연히 종적을 감추어버리고 마는데…….
전체적인 흐름이 자두리의 아들 태산이라는 인물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이 주인공의 탄생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아쉽게도 이 소설이 끝나는데 이 주인공의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이제 독자의 몫이 되어버린 유작을 보며 거칠고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마무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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