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옥류각’ 설명을 보면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닦기 위해 34세 때인 1639년(인조 17)에 세운 누각”이라고 되어 있다.
또 옥류각 앞에 서 있는 문화재 해설 입간판에도 시 홈페이지처럼 동춘 선생이 세운 것으로 적혀 있으며 대덕문화원 홈페이지에도 “동춘 선생이 세운 건물로 건립 방식이 다른 누각에 비해 독특하다”고 적혀 있다.
김 씨에 따르면 제월당 문집(<詩> 題玉溜新閣)에 “옥류각은 비래동에 있는데 동춘 선생이 평생 머물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선생이 일찍이 지은(1666년)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層巖飛玉溜)’이라는 시구가 있다. 내가 젊은이들과 더불어 조그만 누각을 세우고 마침 남기신 시구(玉溜)로 현판을 삼았다(閣在飛來洞 洞是同春先生平生杖?之地 先生嘗有層巖飛玉溜之句 余與少輩謀創建小閣 遂以遺句爲扁)”고 전하고 있다.
김 씨는 또 송규렴의 아들 송상기가 지은 옥류각 상량문을 고증 자료로 들고 있는데 이 문헌에 나타난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66년’은 동춘 선생 사후인 1693년으로 숙종 19년(癸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飛來庵水閣上樑文: 原文省略/崇禎紀元後 六十六年 癸酉三月 日 恩津 宋相琦製)
이들 근거로 미뤄 보면 1639년(인조 17) 송준길이 세웠다는 현재 옥류각의 설명은 비래암 창건을 오인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는 게 김 씨의 주장인데 그는 “동춘 선생이 함께 학문을 연마했다는 우암 송시열, 송애 김경여, 창주 김익희 등 당대의 석학들 역시 옥류각을 세울 때 생존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또 “우암 송시열 선생이 1674년 지은 ‘비래암고사기’에는 비래암은 동춘 선생 생전에 창건되었으며 옥류각은 동춘 사후에 창건된 것으로 확인되며 동춘연보에도 그의 나이 34세 때인 1639년에 비래암에서 공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김 씨의 이런 주장은 대전문화관광해설사와 학예사들 사이에서도 공감하는 것으로 박은숙 대전시문화관광해설사는 “옥류각이 동춘 선생에 의해 지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답사에서도 이 부분을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지난해 대전시청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담당자에게 홈페이지와 책자, 안내판 설명글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이에 대해 대전시 문화재담당자는 “김 씨의 요구로 관련 문헌들을 조사해보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현재 새로운 안내판을 제작하고 있으며 구청과 문화원 등에도 홈페이지 내용을 수정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임연희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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