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구 변호사, 대전시민사회연구소 부소장 |
사실 필자가 그 의사선생님을 알고 지낸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1년 남짓할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그 자리에 왔던 손님들과 의사선생님이 지내온 수십년의 시간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사람을 아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짧은 시간을 만나 왔지만 인격과 라이프 스타일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는 것이리라. 환갑잔치이지만 출판기념회를 겸하여 치러졌다. 사모님이 그동안 의사선생님이 발표한 글들과 지인들의 편지 등을 엮어서 책으로 출판을 하였는데, 그날 그 책을 주인공에게 선물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환갑잔치의 맛난 음식도 아니고 출판기념회의 화려함도 아니다. 필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 날 필자와 같은 테이블에 합석했던 손님을 통해 확인한 따뜻한 칭찬이다.
즉 그 의사선생님은 서울의 모 의대를 졸업하고 대전에 병원을 개업한 이래 이제까지 20여년 동안 줄곧 모교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선행을 베풀어 왔다고 한다.
물론 병원 원장으로서 경제적 능력이 충분할텐데 그 정도 선행이 뭐 그리 대수냐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충분히 사치하고 남는 일부를 기부하는 정도라고 한다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을 위해서는 극도로 검약한 반면 궁핍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언제나 기꺼이 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 기부문화에 대하여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모 연예인들은 기부천사라고 하여 언론에 오르 내리고 있고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기부를 장려하는 공익광고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필자도 여러 공익단체로부터 기부를 권유받기도 하고 그 중 일부단체에는 실제로 기부도 하였다. 그러면서 필자가 느끼는 것은 기부를 하기에는 나는 늘 궁핍하다는 것이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라고 하는 세간의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이 말은 필자가 돈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으로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기부는 풍족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필자는 그 의사선생님의 환갑잔치에서 이와같은 평범한 진리를 또 배운 것이다.
기부문화가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사회구성원들끼리 서로 돕고 위하는 문화가 일반화되는 것은 아무리 권해도 지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기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보면서 필자는 어딘지 모르게 허망함을 느낀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의 기부도 좋지만 그 이전에 기부를 안 받아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빈민구제식의 일회성 구조보다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사회를 구조화 하는 것, 그것이 우선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구태여 번잡한 기부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고 당사자가 느끼는 행복지수도 더 높지 않을까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실업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세금 감면의 문제, 종부세문제 등도 위와 같은 관점에서 깊이있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기부하는 사람들의 착하고 성실한 마음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러한 기부는 칭찬받고 장려되어 마땅하다. 다만 사회적, 국가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평등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개인들에게 기부할 것만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자들을 위해 감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기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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