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정 악화로 인한 미술 시장 침체에다 미술계와 관련한 사건으로 불신의 골의 깊어져 미술은 외면당했다. 하지만 시선을 지역으로 돌리면 그렇게 우울하기만 한 한해는 아니었다.
투자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탓도 있으나 지역에서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작가와 미술인의 활약으로 대전 미술은 갈 곳 많고 볼 곳 많은, 어느 해보다 활기찬 시간을 보냈다. 숫자 키워드를 통해 올 한해 대전 미술을 되돌아보자
▲1회=대전미술 축제
H2O페스티벌과 연계해 열린 미술축제는 그동안 대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미술인들의 염원이 그대로 반영된 자리였다.
이 기간동안 미술인들은 마음의 자세를 조금 낮추고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 작품을 함께 만들며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공예, 문인화, 서예, 서양화, 한국화, 조소 등 미술협회 소속 6개 분과에서 12명의 작가는 시립미술관 광장에 설치된 작업 공간에서 시민들과 함께 초상화를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는 초상화 그리기와 도자기, 조각상 만들기 등 학창시절 미술시간에서 해 봤음직한 미술 실기부터 여름철 무더위를 쫓을 수 있는 부채 위에 아름다운 문인화를 그려 넣기, 또, 먹을 묻힌 화살을 쏘아 그림을 그리는 그림놀기와 가죽과 섬유에 염색하기,우리집 가훈 써보기, 도장 만들기, 나전칠을 이용한 액자 만들기 등의 활동을 통해 미술이 놀이와 같이 재밌는 활동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특히 대전지역 60여명의 미술인들이 자신이 직접 사용했던 일상 용품 뿐만 아니라 미술서적, 작품 활동에 사용했던 소품, 그리고 일부에서는 소규모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벼룩시장’을 마련,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1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전미술축제는 매년 정기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9개=전시공간 늘어
올해 대전에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전시장이 탄생했다.
리모델링을 해 새롭게 태어난 대전창작센터를 비롯, 협회 전용 갤러리, 전문 컬렉션 공간, 커피와 함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 등 그 성격도 다양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우선 미술단체들이 직접 운영하는 협회 전용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그동안 회원들이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있었으나 여러 어려움으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대전 조각가 협회가 물꼬를 텄다. 협회는 창단 2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19일 공간이 협소해 활용도가 낮았던 기존 갤러리를 벗어나 대흥동에 회원 전용공간 ‘DSA갤러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전시공간이 마땅치 않아 작품을 선보일 수 없던 여성 작가들과 청년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관람객들에게도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조각 작품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뒤이어 대전 미술협회도 같은 달 24일 선화동에 미협 전용 갤러리 ‘大美’를 개관했다. 협회는 전시공간 마련이 어려운 청년 작가들을 비롯한 미협 회원들에게 무료로 전시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여기에다 투자와 컬렉션을 위한 갤러리가 개관해 대전 지역 미술 시장의 변화를 꾀했다.
지난 6월 21일에는 대흥동 아트스페이스가 거산(巨山)갤러리로 재탄생해 단순 관람이나 대관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투자와 컬렉션을 위한 공간으로 미술 작품을 예술품으로서만이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삼아 구매할 수 있는 전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등록문화재 100호인 (구)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도 대전창작센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지난 199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이전한 뒤 빈 공간으로 방치돼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현재 생성되고 있는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동시대미술의 시의성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문화 복합공간도 늘었다.
플러스 성형외과 내에는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문화 공간이 마련돼 관심을 끌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의 단순 환자 대기실로 사용되던 공간이 멀티스페이스 ‘공간 플러스’로 바뀌었다. 병원을 찾는 환자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전문 전시 공간으로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커피 숍과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는 ‘커피 볶는 집 쌍리’는 대중에게 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대안공간 게이트도 정형화 된 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설치 미술을 선보여 시민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 2월에는 미술 대중화를 목표로 문을 연 한빛갤러리, 예술의 거리를 꿈꾸는 삼천동의 사비, 책과 함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모리스가 저마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설립돼 앞으로 지역 미술 시장 활성화에 밑거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10년=대전시립미술관 개관 10년
시립미술관은 지역미술은 물론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시민 모두가 그 성과를 함께 누림으로써 보다 여유롭고 깊이있는 삶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중부권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시민들과 지역 예술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서구 만년동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개관했다.
그동안 소장품이 800여점에 이르렀고 80여차례의 크고 작은 기획전시가 꾸준히 개최됐다. 특히 지난 2007년에는 예산 출신 이응노 화백의 미술관을 설립하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0년동안 연인원 10만여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아 그동안 150여만명이 미술관을 다녀갔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불협화음도 잦았다.
올 초 이응노미술관의 작품 분실 소동이 빚어지면서 시의 특별 감사를 받고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들에 대한 인사조치가 내려지며 우왕좌왕했다.
특히 개관 1년도 안된 이응노미술관은 관장 교체라는 악재를 만나기도 했다.
이제 태어난지 10년이 지난 시립미술관이 100년 앞을 내다보는 계획으로 미술인과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공미술관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50년=대전미술 50년 역사 정리 한‘대전미술 하나’전
지난 8월 14일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뜻깊은 전시가 개막했다.
현재의 대전 미술이 있기까지 대전 미술의 역사를 정리하는 ‘대전미술 하나 - 그림으로 말하다’전이 열렸다. 그동안 미술사가 서울 중심의 미술사 만이 존재하는 현재의 편향된 상황을 타개하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특히 그동안 개별적인 정리는 있었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 정리는 처음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전지역에서 활동한 각 시대별 대표 작가 300여명의 작품이 지역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됐다.
전시기간을 연장 운영할 만큼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올해 회화 전시에 이어 2009년에는 ‘대전미술 둘 - 조각과 공예’전이 열릴 예정이다. 지난 회화사 정리에 이어 조각, 공예 부문에 집중하는 2009년의 전시는 특히 회화에 비해 자료가 거의 없거나 모여지지 않은 점을 보완해 한번도 정리된 적 없는 대전 충남 입체미술의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3세=도예가 이종수, 별이지다
대한민국 도예를 대표하던 도예가 이종수 선생이 투병 중 향년 73세로 타계, 미술인을 포함한 시민들에 슬픔을 안겨줬다.
1935년 대전 신안동에서 태어난 이종수 선생은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졸업하며 도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40여 년 동안 투박하지만 담백하고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도자를 빚어내는 도예가로 평가받아왔다.
작가로서 전성기의 활약을 펼쳐야 할 때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우리 곁을 떠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무엇보다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종수-겨울열매’전을 통해 새롭게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나 이를 지켜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대전 미술인들은 뜻을 모아 처음으로 미술인 장을 치뤄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이시우 기자 jab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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