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기 대전대교수 |
최근에는 라인강의 기적은 대운하건설에서 비롯되었다며 독일의 대운하를 벤치마킹하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 정치사회지도자들 중 수도권 집중론자들에게 독일의 분권과 균형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필자는 최근 헌법연구자문을 위해 독일의 카를스루에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했다. 그 곳에는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와 연방최고재판소들이 소재하고 있었다. 수도 베를린에서 500km나 떨어진 인구 20만도 안 되는 카를스루에는 그야말로 독일의 사법수도였다.
그래서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에게 왜 헌재가 수도에 있지 않고 시골에 있는지를 물었다. 사무처장의 답변은 그리 길지 않았다. 헌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떨어져 있고 혹시 자연재해나 인공재해로 수도가 파괴되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되므로 정부의 중요기관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교통통신이 발달해 있는데 공간적 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대답이었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연방의 많은 기관들이 골고루 분산되어 있었다. 독일은 16개주로 연방이 구성되어 있으면서 지방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나라이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고작 너 댓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도권 집중론자들 말처럼 지방권한이 강하고 국가자원이 분산되어 있으면 국가의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생각을 그들은 전혀 하지 않는다.
독일 사람들은 자기 고장에서 태어나 자기 고향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다가 고향에서 죽는 게 당연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생존을 위해서 고향을 등지고 뼈 빠지게 일하고 살다가 이웃의 정도 느껴보지 못한 채 타향에서 객사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독일은 또한 각 지역의 대학들이 나름의 명성을 갖고 있다. 50여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베를린의 홈볼트대, 법학의 산실인 튀빙겐대, 경제노동의 뮌스터대, 문학예술의 라이프찌히대 등 각 지역에 명문이 도사리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꼭 수도로 가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크게 다른 것 같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가고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나이 든 사람들만 지방에 머물러 산다면 과연 그 나라의 경쟁력이 선진국을 능가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수도권집중은 집적의 불경제로 고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역으로 지방은 공동화로 더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는 2중의 부담을 전 국민은 짊어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선 당장 경제가 어려우니 빼먹기 좋다고 곶감(지방의 자산들)을 하나 둘 빼먹다 보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상황을 우리 모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서울에, 아니 수도권에 인구가 부족해서 국가경쟁력이 떨어다는 발상을 갖고 있는 수도권 집중론자들을 보면 마치 식탐이 넘쳐 나는 비만증 환자와 다를 바 하나도 없다. 비만환자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고 느끼다가 나중에는 온갖 성인병으로 인간종합병원이 되어 결국 죽음을 맞는 것처럼 우리의 수도 서울이 그렇게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수도 서울의 오늘 모습은 서울 사람만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땀과 희생으로 이룩해낸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자산이다. 이 값진 자산을 대한민국의 대표 도시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교통사정도 좋고 환경상태도 월등한 그런 도시로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은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고 서울을 쾌적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일부 수도권집중에 목을 매는 학자들과 수도권의 정치행정지도자들이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쾌적한 서울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를 분산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 수도권은 가벼워지고 지방은 영양분을 공급받게 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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