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든 빈손으로 떠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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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든 빈손으로 떠날 준비가 돼 있는가

<맛있는 책읽기>

  • 승인 2008-12-23 00:00
  • 신문게재 2008-12-24 11면
  • 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에세이 작가하면 바로 이 분이다.
몇 번을 읽어도 항상 새로운 울림과 깨달음을 주는 법정 스님의 산문집. 1년 전, 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스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이에겐 따뜻한 위안을,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이에겐 당당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귀한 책.

『홀로 사는 즐거움』 이후 4년 6개월 만에 펴내는 이번 산문집에는 항상 무소유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얼음을 깨어 차를 달이고, 채소 모종을 사다 심고 가꾸는 스님의 산중 삶부터 제철이 되어도 찾아오지 않는 새들을 기다리며 쓴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좋은 책과 독서의 의미, 그리고 월든 호숫가로 소로우의 삶을 찾아간 이야기까지. 언제 봐도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법정스님의 글은 요즘같은 시기에 더욱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이 책의 4번째 단락이 <아름다운 마무리>란 소제목의 글이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말하면서 작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소상히 밝히고 있는데, 우선,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먼저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날 모든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내려놓음, 비움, 간소함등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추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말하는데, 언제든 빈손으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의 핵심이며, 늦가을 서릿바람에 무너져 내린 무성한 나뭇잎들이 때가 되면 새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결론내린다.

자연주의 사상가이자 단순하고 청빈한 삶의 실천가인 법정 스님은 출가 이후 생의 대부분을 산중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하며 지냈다. 홀로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수행하다가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늘자 17년 전 강원도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문명의 도구라고는 없는 오두막에서 홀로 생활해 왔다.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 것인지 저절로 판단이 선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훤히 내다보인다.

<병상에서 배우다>라는 대목에서 자신의 병원 신세를 지면서 느낀 점을 소상히 밝히고 있는데,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앓게 되면 철이 드는지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병과 병이 주는 것을 배움의 바탕으로 삼는 길을 보여 준 스님은 죽음도 미리 배워 둬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란 대목을 보면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사람과 사람을 대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에 소개해 드린다.

강원도 고랭지에서는 가는 곳마다 감자 꽃이 한창이다. 또 여기 저기 대파가 실하게 자라고 있는데 며칠 걸러 농약을 살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런 작물이 버젓이 각 가정의 식탁에 오른다. 우리는 곡식이나 채소를 통해 조석으로 농약을 떠먹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러고도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서 방방곡곡에서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농사 짓는 일도 수익만 따질 게 아니라 인간 형성의 길로 이어져야 한다. 자신이 하는 그 농사를 통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인간이 형성되어 간다면 그 일을 아무렇게나 해치울 수는 없다. 이것은 농사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그 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지구인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가면서 월드컵에 열기를 쏟아 붓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내게는 이것이 화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열기가 바른 길로 선용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보다 밝아질 수 있지만, 불행히도 잘못 악용된다면 걷잡을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시청 앞 광장에서 청소부 아저씨가 하셨다는 말씀이 두고두고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운동만 잘한다고 나라가 잘 되는 거냐? 모든 걸 잘해야 나라가 잘 되는 거지.”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이다.

친절과 따뜻한 보살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고, 믿고 잘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수 있을 것이다. 만나는 대상마다 그가 내 ‘복밭’이고 ‘선지식’임을 알아야 한다. 그 때 그곳에 그가 있어 내게 친절을 일깨우고 따뜻한 배려를 낳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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