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대전시 중구 선화동 287
지정종별 : 등록문화재 제18호
대전의 역사는 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1905년 경부선과 1914년 호남선 개통은 충청권의 중심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일제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철도를 따라 일본인들이 속속 대전으로 모여들었고 대전역을 기준으로 정확히 1.1㎞ 떨어진 곳에 도청건물이 들어섰다. 본래 충남도청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에 있었는데 1932년 10월 1일 대전으로 이전했다.
공주는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던 곳으로 유서 깊은 고장을 떠나 갑자기 대전으로 이전한다는데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남도청은 1931년 1월 13일 당시 사이꼬 마코또 총독에 의해 대전 이전이 발표되자마자 그해 6월 15일 기공식과 12월 12일 상량식을 갖는 등 1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당시 돈 36만 원을 들여 지어졌다.
이 건물은 평남도청(1930년 평양)과 유사하게 설계되었는데 3층 높이의 ‘ㄷ’자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평면은 ‘요(凹)’자 형태인 전형적인 일본 관공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또 외장타일은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가 일본문화를 서양식 해석에 의해 설계한 도쿄의 제국호텔에 사용한 당시 일본건축에 ‘라이트식’이라고 해 한동안 유행하던 갈색 스크래치타일을 사용했다. 벽돌과 같은 크기의 거친 질감의 줄무늬가 들어간 이 타일 사용 기법은 유행이 바로 끝나는 바람에 지금은 독특한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충남도청 건립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등록문화재 100호)은 대전창작센터로, 대전여중강당은 대전갤러리로 탈바꿈해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보전한다는데 의미를 주고 있다.
또 대전의 상공업자를 상대로 자금을 모아 일본인들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은 현재 다비치 안경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만주에서 가져온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화강석과 타일, 테라코타를 사용해 견고하면서도 미적 감각을 살렸다.
한편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 받고 있는 충남도청은 2012년 홍성·예산으로 이전이 계획돼 있어 향후 박물관으로의 활용이 검토되고 있는 상태다. / 임덕호 시민기자.영상=금상진 기자
※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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