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이라 불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이런 일 저런 일에 매달려 지냈습니다. 시간만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한 해가 기울어 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듯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조금은 착잡해지고요. 그래서 그리워집니다. 문득 생각날 때 찾아가 보고 싶은 그런 분입니다. 형님은 먼 곳에 계셔도 그렇게 곁에 있어주곤 합니다. 어깨에 손 걸친 채 함께 걷고 싶습니다. 외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앞에 서면 한없이 낮고 초라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그래도 소중합니다. 마음은 강을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격강천리(隔江千里)가 아닙니다. 편안합니다.
사연 있어 말 못하고 가슴 답답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고픈 말 많아도 상처받을까 혼자 삼키기도 합니다. 아픔 줄까 말없이 웃음만 건네고는 입 다물기도 합니다. 형님은 다릅니다. 허물없이 농담 던져도 됩니다.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더 절실해질 때가 많습니다. 술 같이 마시며 주정하고 싶습니다. 다음 날 잘 들어갔느냐는 말 듣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위맞추며 사는 일이 버겁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별 일 없다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아무 일 아냐 합니다. 하지만 형님에게는 속내 털어놓고자 합니다.
성배 군이 손으로 쓴 편지다. 한 잔 걸치면 노래는 신곡 일변도에 마이크를 놓지 않는다. 엉덩이춤 또한 일품이다. 그런 연유로 별명은 제비. 가끔 당도하는 이런 내용에 당황한다.
어울리지 않고 촌스러운 메떨어진 면모가 오히려 아름답다. 어느 누가 내 깊은 곳 내보이려 하는가. 아파도 속상해도 내 안에 담고 산다. 그러다 보니 썩어가는 속이다. 영옥이는 어떤가. 역시 황당하다. 그 조용한 녀석이 도둑질 했노라 했다. 이메일로 고백했다. 지난 일요일 산에 올랐지. 오르던 길목에 절이 있었네. 발길 따라 법당에 들어갔어. 부처님이 천이나 동석해 계셨고. 상념이 천 가지. 그 천불 가운데 하나 내 집으로 모시고 말았네. 부처님 한 분에 나 하나의 생각이라 여긴 게야. 얼마 동안은 그랬었지.
변하는 게 없더구먼.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하는 거 아니겠나. 오히려 더 시름에 잠기곤 했어. 시내에 잠간 출타했었네. 귀가해서 보니 탁자 위에 모신 그 어른이 안계셨네.
무언의 말씀이 전해져 왔어. 나 돌아가네. 보자 하니 더 괴로워하는 거 같아서 내 거처로 가는 걸세. 사람번뇌가 백팔번뇌. 하나 끊으면 둘이 생기는 인생. 그저 그냥 사시오 하셨다.
모처럼 온 소식이 이렇다. 그래도 곰곰 씹어보다가 보냈을 터이다. 순박한 건지 아니면 너무 진지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애틋한 그 뭔가가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얼굴 본 지 오래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메시지 날리려 작정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놓쳤다. 여기 첫눈 온다. 거기도 오냐는 전화를 받고 말았다.
영옥의 그 말 속에는 보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며칠날 만나자는 언약을 기대했으리라. 성배도 이제나 저제나 하며 화답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만남을 줄이려 한다. 술자리를 멀리한다. 좋기는 하다. 심신이 편안하다. 서너 잔으로 끝내는 습성이 아니다. 종착지는 폭탄주다. 무리하는 작태라 알면서도 저지른다. 그래도 만나야 할까. 매번 붕괴되는 자제력을 시험해야 하는가. 하기야 이번 겨울엔 거기서 한 잔 하고 싶다. 도선장이다. 수십 번 장항에 갔다. 그러면서도 가보지를 못했다. 잊고 살았던 매표소와 영모의 가게가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그곳 목로에 앉아 잊고 살았던 너는 내게 있어서 사랑임을 전하고 싶다. 좋은 꿈은 내년에도 꾸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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