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진]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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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카드

[중도춘추]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08-12-18 00:00
  • 신문게재 2008-12-19 20면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유학시절에 한국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의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이 가장 그리웠던 때는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한국 고유 명절이 아니라 서양 명절인 크리스마스 때였다. 우리 집 골목길 끝에 자리 잡고 있던 문방구에서 흘러나오던 디지틀 캐롤과, 알록달록한 무늬의 성탄카드들, 트리 장식용 전구와 반짝이던 리본, 그리고 용돈을 모아 큰맘 먹고 구입했던 소년중앙의 (지금 생각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듯한) 찬란한 연말부록들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었다. 하지만 미국 친구들은 학기말 시험을 끝내자마자 ‘즐거운 성탄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말을 남기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버렸고, 도시 전체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쓸쓸하다 못해 스산하게 느껴지기조차 하였다.

아버지의 카드는 이렇게 아득하고 따뜻했던 크리스마스를 이국에서 그리워하는 내게 무척이나 반가운 선물이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싫기만 했던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나서도, 사실 한국에서 함께 사는 동안 우리 부녀는 편지나 카드는 물론이고,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저녁상 앞에 한번 함께 앉기도 힘들었었다. 때론 서로의 바쁜 일과 때문에 한집에 살면서도 며칠 못 볼 때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게 되더라도 ‘보고 싶다’느니 ‘사랑한다’느니 등의 말은 차마 꺼내기 힘들었었다. 유학을 떠나고, 멀리 있게 되어서야, 나와 아버지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 카드나 이메일에 멀리 있어 서로 챙겨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곤 하였다.

아버지와 자녀가 서로에 대한 염려와 애정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2006년 어느 가정복지재단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평일 5일 동안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두 시간 미만이었다고 한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업무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자녀역시 평소 대화가 없어 어색한 아버지 보다는 TV를 선택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대학생 응답자의 44%가 ‘우리 아버지에게 있었으면 했던 것’은 ‘재력’이라고 답한 현실이 보여주듯이 아버지들은 가정 경제를 온전히 책임지느라 너무 바빴고, 피곤하였으며, 아이와 함께 놀면서 사랑한다고 말해 줄 기회를 많이 놓치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60% 가까운 대학생 응답자들은 아버지에게 너무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이 ‘사랑합니다’였다고 하는데, 경제적 의무만을 지고 있는 아버지에게 자녀들이 사실 원했던 것은 사실 정서적인 유대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고, 곧 새해가 시작된다. 조금은 낯설지만 따뜻한 인사와 사랑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먼저 건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손으로 꾹꾹 눌러 카드를 쓰고, 오랜만에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여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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