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에 한국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아버지의 카드는 이렇게 아득하고 따뜻했던 크리스마스를 이국에서 그리워하는 내게 무척이나 반가운 선물이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싫기만 했던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나서도, 사실 한국에서 함께 사는 동안 우리 부녀는 편지나 카드는 물론이고,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저녁상 앞에 한번 함께 앉기도 힘들었었다. 때론 서로의 바쁜 일과 때문에 한집에 살면서도 며칠 못 볼 때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게 되더라도 ‘보고 싶다’느니 ‘사랑한다’느니 등의 말은 차마 꺼내기 힘들었었다. 유학을 떠나고, 멀리 있게 되어서야, 나와 아버지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 카드나 이메일에 멀리 있어 서로 챙겨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곤 하였다.
아버지와 자녀가 서로에 대한 염려와 애정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2006년 어느 가정복지재단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평일 5일 동안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두 시간 미만이었다고 한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업무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자녀역시 평소 대화가 없어 어색한 아버지 보다는 TV를 선택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대학생 응답자의 44%가 ‘우리 아버지에게 있었으면 했던 것’은 ‘재력’이라고 답한 현실이 보여주듯이 아버지들은 가정 경제를 온전히 책임지느라 너무 바빴고, 피곤하였으며, 아이와 함께 놀면서 사랑한다고 말해 줄 기회를 많이 놓치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60% 가까운 대학생 응답자들은 아버지에게 너무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이 ‘사랑합니다’였다고 하는데, 경제적 의무만을 지고 있는 아버지에게 자녀들이 사실 원했던 것은 사실 정서적인 유대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고, 곧 새해가 시작된다. 조금은 낯설지만 따뜻한 인사와 사랑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먼저 건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손으로 꾹꾹 눌러 카드를 쓰고, 오랜만에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여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