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하는 계룡축제
계룡축제는 지난 2004년 계룡시 승격 1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렸다.
‘시민과 함께 하는 어울한마당’이라는 주제로 매년 개최돼 계룡 군문화축제와 더불어 시민들의 화합과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시 대표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많은 지자체의 축제들이 해당 지역의 특산품 판매와 역사적인 인물, 문화재 등을 소재로 하여 관광객 유치 등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데 비해 계룡축제는 시민화합을 최우선 목표로 정해 지역내 각 기관, 단체, 시민이 혼연일체가 됐기 때문이다.
또, 문화시설 부족으로 인해 평소 고품질 문화체험 기회가 적은 계룡시민들에게 있어서는 계룡축제를 통해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한자리에서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제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
계룡축제는 2일동안 공연, 전시, 참여, 부대행사 등에서 총 5~60개 종목의 각종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있으며 1만여명에 달하는 시민이 축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행사프로그램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다양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도록 선정하고 있으며 특히 시민들이 직접 참여가능한 체험형 소재를 더욱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축제를 단순한 구경거리로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닌 시민 스스로가 축제의 주인이자 대상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월에도 제5회 계룡축제가 시청 앞 광장과 새터산 공원 및 인조잔디구장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풍물단의 거리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축제기간동안 전시행사 5종목, 참여체험행사 22종목, 기타2 종목 등 총 51분야의 다양한 즐길거리와 볼거리로 구성돼 특색있는 행사가 풍성하게 마련됐다.
또 어린이들을 위해 안전하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전용 놀이공간을 마련해 이를 통해 다수의 어린이와 가족들이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별도 개최되던 팥거리를 축제를 통합해 축제의 남발을 막아 효율성을 기하고 우리 지역 왕대리에서 첫 시작된 연산 백중놀이 시연을 통해 향후 우리 지역 고유문화로서 육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무대가 됐다.
한편, 시민과 함께하는 축제로 자리잡은 계룡축제는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계룡시는 계룡축제가 시 최대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계룡 군문화축제와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면서 규모가 작은 계룡축제의 기능과 역할 축소되고 또한 낭비성 행사라는 여론에 따라 계룡축제를 봄철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계룡축제와 계룡 군문화축제의 상호 발전을 도모하고 시민화합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양대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전통 민속놀이도 풍성
▲백중놀이
백중놀이는 현재 논산시 연산면에서 주관하며 연산 백중놀이로 명칭이 굳었다. 하지만 원명은 왕대리 백중놀이로 성종 24년(1494)부터 두마면 왕대리에서 전승해 오던 놀이로써 3년마다 음력 7월 15일 백중일을 기하여 백년대길, 세화연풍을 기원하던 두레싸움 성격의 민속놀이다.
조선조 성종때부터 좌의정을 지낸 서석 김국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역이 있는 두마면 왕대리와 인근 27개 동리 사람들이 농사일이 거의 끝나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일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후 인근 두계천변에 모여 난장판을 벌인 것이 시초다.
이후 연산일대 광산 김씨들이 백중일에 연산장터에 모여 백중놀이를 벌렸고 한창 성행할 때에는 전국의 한량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민속 축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각 마을마다 두레조직의 우두머리격인 좌상들의 인솔하에 모여 각종 제의식을 마치고 효자 효부에 대한 표창과 불효자에 대한 벌을 논했으며 그해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선발하여 푸집한 상을 주기도 했다.
경비는 광산김씨 집안에서 부담했는데 백중놀이가 끝나고 나면 광산김씨 집에는 된장 등 부식물이 바닥이 났다고 할만큼 놀이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연산 백중놀이는 일제시대에도 계속되어 오다가 총좌상이던 김창수씨가 사망한 1942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전수자로서 유일하게 생존한 김복수씨가 47년만인 1989년 연산면 고양리, 표정리, 관동리, 백석리, 주민들에 의해 발굴 재현해 제3회 놀뫼 향토제에서 시연하며 부활시켰다. 1990년 11월 25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31년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는 종합 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금암동 노제
금암동 광수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흘이면 마을 입구의 노목 앞에서 거리제를 행함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퐁농을 기원한다.
제관, 축관, 유사 각 2명씩 6명의 관제를 뽑고 이들은 거리제를 지내기 위해 금기를 행하며 마을의 공동 우물을 깨끗하게 품는다.
거리제에 올려지는 제물은 준비함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제물의 구입과 함께 제에 사용되는 비용은 호당 거출된 금액으로 충당한다. 거리제는 초사흘 저녁 8시경에 시작하는데 마을의 공동 우물에 ‘샘고사’를 지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샘고사는 풍물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물로부터 전해지는 질병이 없기를 기원한다.
샘고사가 끝나면 제관과 마을 주민은 곧바로 제장인 마을 입구의 노목 앞으로 행진한다. 이 때 풍물은 제를 치르는 일행을 선도하며 거리제의 시작을 알린다. 제장에 도착하면 풍물은 더운 흥을 돋우고 제관은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제물진설->분향->헌작->독축->소지의 순으로 하는 바 소지는 호당 소지를 여럿이 나누어 동시에 올린다.
제가 끝나면 다시 풍물이 울리고 제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마을회관에서는 거리제를 올린 제물로 음복하면서 한 해의 마을 일에 대한 동계를 한다.
▲산신제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두마면 광석리 나분들과 향한리에서는 산신제가 열린다.
나분들 산신제는 제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제관, 제관을 도와 축을 읽는 축관, 제물의 준비를 담당하는 유사 에 뽑힌 사람이 주관한다. 이들은 산신제를 거행함에 있어 정월 초사흘부터 제일인 정월 열나흘까지 금기한다.
이들의 집에는 왼새끼로 꼬아서 만든 금줄을 치고 집 앞에는 황토흙을 뿌려 악귀의 출입을 막는다. 또한 제관은 마을 뒷산에 마련된 산신당을 정성껏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산신제에 올려지는 제물로는 소머리(생것), 술(유사집에서 빚은 곡주를 사용함), 삼색실과, 시루떡, 메밥 등이 있다.
제물의 준비와 함께 제에 사용되는 비용은 동계에서 보조되는 기금과 소지대금으로 충당하는데 대체로 동계에서는 쌀로 1가마 반을 내놓으며, 소지대금으로는 약간의 돈을 걷는다. 산신제는 정월 열나흘날 밤 자시에 행하는데 제의 순서는 제물진설->초헌->독축->아헌->소지의 순으로 행한다. 이때 초헌은 상소임인 제관이 올리며, 아헌시에는 두 잔의 술을 올린다.
두마면 향한리 산신제도 이와 비슷하게 운영된다.
향한리 산신제는 이 마을에서 50여리 떨어진 논산장을 이용할 때 밤에 고개를 넘어오면서 호랑이를 피해 무사히 올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 지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해 동안 각종 재해에서 마을을 보호하고 질병, 전염병이 없도록 기원하는 평안 소지를 빌게 되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어림잡아 150여년 전부터 매년 행하여 왔다고 하고 일제 시대에는 일본일들이 주장하는 내선일체 및 천왕을 신격화하는 등 토속신앙으로 뿌리잡은 산신제를 지내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3년 동안은 지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향한리 1구 금산당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드린 후 향한 2구 영계말 하천옆 지석돌에서 지신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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