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항상 일정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즐겁고 기분이 좋을 때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고, 나이가 들수록 1년이란 시간이 훨씬 짧게 지나간다.
필자는 지난달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
그 30년간은 역대 한국사회에서 가장 빠른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농경사회에서 첨단 지식정보화 사회로,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어엿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공직자로서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필자에게 행운이었고 행복이었다.
그 중에서도 행복청에서 보낸 2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행복도시를 세계인이 살고 싶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품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중차대한 책임을 맡으면서 때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만큼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개발계획수립과 실시계획 승인, 정부청사와 중앙녹지공간 마스터플랜 수립, 역사적인 기공식 개최, 고려대· KAIST· 산림청 등과의 협약체결, 저탄소녹색도시를 위한 국제심포지엄 개최와 프라이부르크시와의 협약체결, 그리고 주민들과 소통을 위한 1과1촌 운동 등등.
하지만 이러한 모든 성과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아낌없이 내주고 떠난 예정지역 주민들과, 지역민들의 협조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지역민들의 성원 뿐 아니라 행복도시 건설사업에 함께한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매듭 하나를 지을 수 있었다.
꿈의 나래를 펼치던 원수산, 전월산 자락, 그리고 쉼 없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금강과 미호천도 사랑스럽고, 가을이면 황금물결 넘실대던 대평뜰과 장남평야 이 모든 것들이 잊지 못할 정겨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아쉬움과 좀 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제시한 비전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적도 있고, 공평한 인사원칙을 세우고자 부하직원과 일정거리를 유지하다 보니 조직 구성원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지 못하고 간혹 형식적으로 대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아쉬움은 공직자로서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국민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책판단 기준의 제1은 위민성(爲民性)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성과 경제성, 효율성 등이 충돌할 때 필자의 신조를 지키지 못한 때도 있었다.
제갈공명의 후출사표(後出師表) 마지막에 국궁진력(鞠躬盡力)이란 말이 있는데 지난 30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국궁(鞠躬)도 진력(盡力)도 부족했던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돌이키며 세심정혼(洗心淨魂) 해본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국민을 위해 국궁진력(鞠躬盡力)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한다면 먼 훗날 아쉬움보다는 공직생활을 행복했던 추억으로 가슴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경제의 침체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무자년(戊子年)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후배 공직자들이 기축년(己丑年) 새해에는 좀 더 분발해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희망을 심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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