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이었던 충북 영동 상촌면 임산리에 위치한 상촌중학교부터 걸어온 30년이 그러하고, 또 오늘같이 대전천이 꽁꽁 얼어붙은 날이면 여지없이 냇가에 나와 얼음을 지치고 놀던 아이들 보고픔이 그러하다.
학교가 끝난 뒤
▲ 김정 대전괴정고등학교 교사 |
농번기가 되면 아이들에게 집의 일손을 도우라고 방학을 주고 선거와 같은 나라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시골길을 다니며 주민들 투표에 참여하라고 또 이런 방법으로 하라고 계몽도 하고 다녔다. 가을이면 아이들에게 머루와 다래 따는 법을 배웠고 가을비가 온 뒤에는 오이꽃버섯 밀버섯 청버석 밤버섯 가지버섯 능이에 송이 따는 법도 배웠다. 내가 그들의 선생님이었다면 아이들 또한 나에게 산촌 속에서의 삶을 터득하게 하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인성교육프로램이라고는 딱히 정해진 것도 없던 시대의 아이들이었지만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가르치고 또 서로를 깨우치게 한 삶의 동반자였기에 지금처럼 조직화된 교육의 방법이 다량으로 적용되는 세상의 아이들에 비하면 내 길동무 하던 산골 아이들은 그래도 인성이 어떻다고 그리 염려했던 기억이 없다.
분필가루가 소복이 교단주변을 채워도 쉬는 시간이면 정성스레 닦아놓고 수업을 기다리던 아이들, 분필을 신문지로 돌돌 말아 칠판에 가지런히 놓고 기다리던 아이들. 피아노가 없어 주번학생들이 풍금을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녔어도 뭐 그리 소란하다 불편하다 들은 적 별로 없던 그런 시절, 집안이 그렇게 어려웠어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복의 깃을 하얗게 다려 입고 오던 아이의 모습은 더욱 그립다.
그리고 대전으로 넘어오며 운영하기 어렵다는 관악합주부 아이들과 6년을 살았다. 아직도 이맘때면 군에 간다고 꼭 찾아와 인사를 하고 부대에서도 시간이 나면 안부를 묻는 아이들로 전화가 바쁘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간 일이 있었다. 아픈 머리를 감아쥐고 피를 닦으며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살펴주던 충남고 시절의 제자가 의젓한 의사로 성장하여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날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치료해준 동현이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한다.
돌아보면 망각하기엔 너무 간절한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과 동료 선배 후배 선생님들 생각이 그리움을 더한다. 그러나 걸어온 30년을 추억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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