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항상 우울하던 작곡자가 활기 넘치는 미국여행에서 갓 돌아와 조증(躁症: Mania)의 심리상태에서 악상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 요정의 춤에 미국에서 사온 첼레스타를 처음으로 쓴 것도 이 생각을 뒷받침한다. 어쨌든 음악의 예술성은 논외로 하고, 줄거리에 어울리는 기막힌 표현과 다양하고 이국적인 예쁜 멜로디로 가장 사랑받는 명곡이 된 것은 틀림이 없다.
따라서 비록 녹음일지언정 이 발레의 생명은 절반이 음악이라는 점은 이번 공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첫날 공연이어서인지 유니버설 때처럼 1막 초반에 음향이 다소 불안했으나, 몇 분 만에 바로잡힌 뒤로는 어느 공연 때보다 훌륭한 음악을 즐겼다.
유럽이나 러시아의 고전예술계는 그 층이 한없이 두텁다. 지방예술인의 수준도 중앙의 그것에 비해 무딘 눈과 귀로는 감별이 어렵고, 출연인원의 구성에 따라 때로는 더 높은 실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한마디로 이 공연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모든 단원이 프리마 발레리나 못지않은 스타급 기량으로, 특히 군무의 엘레베이션 장면에서는, 12 벌의 투투가 마치 무대를 가득 채워 꽃으로 피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꽉 들어찬 무용수들로 무대가 좁아 보일만큼 객석을 압도한 것은, 그네들의 정확한 자세와 동작 덕분이지 옆에 앉은 젊은이들 표현대로‘기럭지’부터 다른 탓만은 아니었다.
시종 미소를 띤 단원들, 음악에 맞춰 격한 동작을 정확하게 시연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로 객석의 시선과 이야기의 맥을 여유 있게 끌어가는 주연진들, 덕분에 객석은 꿈의 세계로 행복한 여행을 마쳤다. 벨라루시 버전은, 모든 장면이 매끄럽게 이어져 잠시도 흥을 떨구지 않고, 우리의 꼭두각시 춤을 닮은 인형의 춤은 지극한 친밀감으로 다가왔다. 국내외로 암울한 연말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고, 새 희망을 지어갈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점화한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도우미들에게 병정 옷을 입히고, 막이 오르기 전 로비에서는 분장을 한 직원들이 마술 쇼를 펼쳤으며, 평소에는 너서리 룸에 갇혀 찬밥신세이던 어린이도 키높이 방석을 제공받는 호강을 누렸다.
로비에서 판매한 목각인형 또한 색다른 서비스였다. 이렇게 풍성하고 즐거운 가족 송년회를 마련해준 예당과 J&S 기획, 그리고 중도일보에 감사한다. 한마디 덧붙인다. 어린이에 대한 배려는 온 가족의 즐거운 잔치를 위함이다. 드로셀마이어가 코믹한 표정과 몸짓으로 유도할 때 박수로 따라준 객석의 수준은 자랑스럽지만, 무대 앞으로 다가와 함빡 웃을 때 한바탕 폭소로 맞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 모두 잔칫날에는 웃음을 아끼지 말자. 아니, 어찌 잔칫날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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