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필]'농촌.도시 하나로' 정뱅이 마을의 변신

[권선필]'농촌.도시 하나로' 정뱅이 마을의 변신

[기고]권선필 목원대 교수, 정뱅이마을 주민

  • 승인 2008-12-10 00:00
  • 신문게재 2008-12-11 12면
  • 권선필 목원대 교수권선필 목원대 교수

정뱅이 마을은
▲ 권선필 목원대 교수, 정뱅이마을 주민
▲ 권선필 목원대 교수, 정뱅이마을 주민
도시 근교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주민등록상으로는 스물 여섯 가구 육십 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도시로 나가 살고 있는 자녀들을 빼고 실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삼사십대 네 가정과 나머지 육칠십 대의 노인들이 부부로 혹은 홀로되어 살고 있는 고령화된 마을이다.
대다수의 농촌이 맞이하고 있는 현실처럼 정뱅이마을도 한편에서는 도시의 주변부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령화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농촌마을의 현실을 새롭게 바꾸어 보고자 하여 시작한 것이 정뱅이마을의 마을가꾸기이다. 마을을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아가서 행복한 곳으로 바꾸기 위해서 뜻있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서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2004년 마을에 있는 구세군 교회에 새로운 백순자 사관(일반 교회의 목사나 성당의 신부님에 해당하는 분)이 오시고 서 부터이다. 도시에서 계시다가 이곳에 오신 백순자 사관은 정뱅이마을의 자연에 매료되셔서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는 꽃가꾸기와 주변의 널려있는 들꽃을 가지고 누름꽃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다. 봄 여름 가을 제철에 나는 갖가지 동네의 꽃을 손수 따서 책갈피에 넣어 말렸다가 이것을 잘 배열해서 꽃액자를 만드셨고 그 전시회를 매년 개최하신 것이다. 시골 마을이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알음알음으로 방문하신 분들에게 꽃액자를 선물로 드리고 해서 마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 마을에서는 농림부에서 주관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에 응모하여 선정되었고, 이어서 2008년 건설교통부에서 주관하는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에서도 선정되게 되어 재정지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국가 공모사업에 응모하고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한 것이 성공의 요인이 됐다. 추진위원회에는 노인회장, 부녀회장, 영농회장 등 기존의 마을리더들은 물론 마을에서 변화의 씨앗을 뿌렸던 구세군 교회 사관, 그리고 이 마을에 정착한 필자의 결합에서 효과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지원을 획득
▲ 정뱅이 마을의 담장개선 사업 모습.
▲ 정뱅이 마을의 담장개선 사업 모습.
하기 위해 제안한 내용은 폐가를 정비하고 낡은 담장을 개선하는 것과 같은 마을 환경개선, 체험마을로 만들기 위한 준비로 체험기반시설과 체험관 건립, 그리고 마을 가꾸기 관련한 각종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 마련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정이 되고 나서 사업 진행과정에 있어서 문제는 마을 주민들이 추구하는 마을의 미래모습에 대해서 주민들 간에 나타나는 갈등이었다. 도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깊이 자리잡고 있어 한편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부터 빠르게 혜택을 보고 싶어하는 이기적 행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다른 편으로는 주민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건축물이나 도시 모습처럼 깔끔하게 마을을 바꾸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진위원회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회의 운영, 그리고 추진위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은 최소화 하고 나머지 주민들을 먼저 배려하는 희생적인 자세로 일을 추진하자는 데 합의를 하였다. 아울러 사업 추진에 있어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뿐 만 아니라 외부전문가들에게 일의 추진을 맡겨서 전문성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뱅이마을 가꾸기 계획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은 창조적 접근과 공공미술의 재발견에 있다.
공공예술적 접근의 도입은 정뱅이마을이 ‘도시 변두리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채택한 것이다. 농촌마을의 개발이 외양은 번듯하고 깨끗한 것처럼 보이는 도시적인 모습을 흉내내고자 하는 건설사업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을에서 계획했던 친환경, 녹색체험, 자연에서의 아름다움 발견과 같이 포함되었던 녹색체험마을계획,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역사문화로 재창조하려던 역사문화마을 가꾸기 계획을 구체화 하는 실천적 대안으로 공공예술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정뱅이마을에서 공공예술은 마을이 가지고 있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희망, 그리고 마을에 잠재되어 있는 역사적 유산과 구조를 주민들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마을에서 진행된 각종 시설물 공사는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통해서 선정되었다.

사업 초기부터 논의되던 담장개선 사업이 단순히 과거의 새마을 담장을 철거하고 대량생산되는 건축 재료로 대치되는 것을 폐기하고 공공미술가들에게 맡겨서 새롭게 디자인되고 설치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수차례의 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에과 소통하였고, 주민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담장의 형태를 선택하였고, 작가와 협력하여 담장을 꾸미는 데도 참가하였다. 담장개선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서는 주택이나 담벽을 새로 칠하고 그 위에 미술작품으로 장식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시 작가들은 주민과 상의하여 원하는 그림이나 방식을 선택하도록 하였고, 일부는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공공미술은 마을의 환경개선이 도시변두리로 변하지 않도록 하였음은 물론 주민들이 유일무이한 작품들을 자신들의 생활환경을 갖추게 됨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아가 획일적인 마을시설 개선에서 벗어나 전 세계에서 유일한 작품을 가진 마을로 변화하므로 차별화되고 경쟁력있는 문화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공미술로 재창조된 마을환경은 향후 각종 체험활동을 마을에 유치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될 마을 자산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질성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농촌을 도시처럼 바꾸는 근대화나 도시화가 아니라 창조성에 바탕을 둔 예술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성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이 희망이다. 농촌이 도시를 모방하며 쫓아가는 것이 안 되려면, 한국 사회가 소위 말하는 선진국을 모방하고 쫓아가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더 이상 모방과 추격을 멈추고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예술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예술은 경쟁이 아니라 자기표현이고 자기표현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작품으로서의 결과가 아니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가 아니라 ’인생이 짧기 때문에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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