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93년
▲ 이난희 유성구 봉명동 |
30대 한창 나이를 그렇게 바쁘게 보내다가 2002년 휴양림 운영을 접게 되면서 10년간의 단체급식 경험을 살려 포항으로 내려가 식당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포항은 대규모 공단지역으로, 가족과 떨어져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다가 공단이 3교대로 풀 가동을 했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따로 없다. 그래서 식당을 24시간 오픈해 근로자들이 언제든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고, 공장으로 2-30인분씩 배달을 하기도 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좋은 식재료와 가족 같은 친절함으로 손님을 대하니 단골도 많아지고, 수익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그동안 남편이 마음을 많이 추슬렀고, 아이들도 낯선 곳에서 적응을 잘해 학교생활도 열심히 해준 것이었다.
2년 후에는 가족과 고향이 그리워 다시 대전으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포항에서의 경험에 자신감을 갖고 다시 식당을 운영했지만, 그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아 경제적 손실도 많았고 그만큼 마음고생도 많았다. 식당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청주에 본사를 두고 오랜 기간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제안으로, 식당을 과감히 접고 결혼정보회사를 시작해 3년째 하고 있다.
국내결혼과 함께 몽골여성과의 국제결혼을 많이 추진하는데, 처음에는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고객과의 계약과정에서 손해를 보기도 했고, 동남아 결혼이주 여성들의 잇단 사고가 알려지면서 국제결혼에 대해 편견을 갖고 보는 시각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결혼정보회사들과 정보 교류를 시작하고, 혹시라도 법 제도나 몽골 현지 사정 등을 몰라 본의 아니게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 결혼이주 여성들의 정착과 권익보호를 위해 ‘대전발전연구원’에서 주최하는 ‘가족포럼’에도 매월 참여한다. 또한 몽골의 역사를 비롯해 신붓감이 될 몽골여성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몽골에도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나가 현지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컴맹이었던 제가 이메일을 시작으로 컴퓨터와 인터넷도 활용할 줄 알게 되었고, 기왕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도 수강해 사업자로서의 소양을 갖추려고 한다. 수익을 최종목표로 하는 다른 사업과 달리, 천생배필을 짝지어 줌으로서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당장의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얼마 전 폐막된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 박태환 등 금메달리스트의 땀과 노력이 온 국민을 감동시켰다. 특히 ‘우생순’이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여자 핸드볼 팀은 우리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었다. 올림픽에 ‘우생순’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 ‘내생순’이 바로 요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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