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대전시 대덕구 장동 산 85외 10필지
지정종별 : 사적 제355호
계족산성, 우술성, 장동산성, 질현성, 보문산성, 월평동산성, 성치산성 등 40여개의 크고 작은 산성이 즐비한 대전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산성(山城)의 도시다. 대전에는 왜 이렇게 산성이 많을까? 답은 간단하다.
교통과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적의 침략이 많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 산성을 쌓았을 것이다. 대전이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이곳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서울을 공략할 수 없으며 대전을 전초기지로 삼지 않고서는 남쪽을 점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전은 백제시대 우술군(雨述郡) 관할지역과 일치하는데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계족산과 식장산계 산령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간의 접경지로 백제군의 최전방 역할을 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계족산과 식장산 방어선은 신탄진에서 옥천에 이르는 금강과 그 도하점(渡河點)을 방어함과 동시에 신라의 전초기지인 보은 삼년산성에서 옥천~대전~공주에 이르는 신라의 침입로를 방어하기 위해 백제에서 축조한 것이다.
계족산과 식장산
성벽은 대부분 흙을 깎아내고 바깥쪽에만 돌을 쌓는 수법으로 만들었으나 동벽 일부는 안팎으로 모두 돌을 쌓고 내부를 흙으로 채우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 지난해 복원된 계족산성 연지(蓮池)는 길이 24.8m, 너비 5.2m, 깊이 2.7m의 현재 확인된 것 중 최대 규모로 우리 조상들의 토목 및 건축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계족산성과 연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전 관내에 있는 산성들은 백제와 신라간의 국경선상에서 웅진(공주) 및 사비(부여)로 진출하는 공격로에 겹겹으로 배치해 공격보다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계족산성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봉수대는 지금은 파괴되고 담장 일부만 남아있지만 동쪽에 있는 옥천군 환산봉수(環山烽燧)에서 연락받아 문의현(文義縣)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로 전달하는 중요한 통신수단이 되기도 했다. /임헌기 시민기자.영상 금상진 기자
※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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