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산행은 주로 대전 인근의 산을 이용하는데 몸이 부실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산을 오를 때 급하게 정상에 오르고 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오른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가면 빨리 갈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 속으로 들어온다. 자동차타고 휙 지날 때하고 걸을 때하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나무들의 생김새나 잎과 꽃들이 보이고, 바위와 계곡물이 얼크러지는 것도 보이고, 작은 곤충이나 새들의 생존의 숨바꼭질도 보인다. 그들끼리 부대끼고 어울리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들여다보게 된다.
불현 듯 나도 그들 속에 같이 어우러져 살고 싶고 또 받아 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그들과 멀어져있음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에 대해 책망을 하고 또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다가 가장 먼저 택한 것이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자고 한 것이다. 사람관계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랑 친해지려면 가장 먼저 상대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 주는 것부터 해야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막상 불러주려 하니 대부분 이름을 모르겠고 아는 것은 몇 개가 되질 않는다. 그래도 어려서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많이 알줄 알았는데 막상 이름을 불러 적어보니 서른 개 남짓 밖에 되질 않는다. (참고로 우리나라 자생식물 종은 4,100여종이다.) 참으로 민망했다. 갑자기 풀들에게 미안했고 나무들 보기가 열적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야생화에 관한 책도 사서 자꾸 쳐다보고, 사진도 찍어 와서 인터넷도 뒤져 확인하고, 그리곤 다시 산이나 들에 가서 만나는 풀들을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풀밭에 앉아있으면 이름을 아는 녀석들이 머리를 쓰윽 들이대며 반겨 맞아주는 데 모르는 녀석들은 목을 외로 틀고 딴청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많이 미안했다.
처음에는 풀밭에 앉아 쭉 둘러보면 아는 녀석들이 한 두 녀석이었는데 이젠 제법 아는 녀석들이 생겨 뻘쭘하지가 않다. 그렇게 그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고통스러운지, 힘이 넘치는지, 왜 병이 들었는지, 꽃이 왜 크고 작은지, 하필이면 거기서 살고 있는지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들과 대화 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보내는 이야기는 정말 많다. 내가 들을 줄 몰라서 그렇게 함부로 대했던 것뿐이다.
분명 그들이 이 땅에서 우리들 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살면서 자손을 낳고 번성해 왔고 앞으로도 더 오래 살 것이다. 이젠 그들 목소리를 들으면서 다음세기에 대한 지혜를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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