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던 만리포해수욕장 인근에서 수 대째 살아온 국응복씨(55ㆍ만리포관광협회장)는 지금도 1년전 악몽으로 바닷가 인근에서 검은색만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기름피해의 직격탄을 맞아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의 상징이 된 만리포해수욕장은 그날의 그 모습과 1년 후의 지금의 모습은 외견상으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한 모습을 되찾고 을씨년스런 날씨에도 간간히 관광객들이 보이고 있다.
만리포해수욕장 인근 소원면 의항리 이충경(47) 의항어촌계장은 그때를 회상해 보라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녁때 부터
▲ 근흥면 정죽리 어촌계원들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다. |
예전같으면 굴을 출하하느라 가장 빠쁜 시기가 될 터인데 지금은 피해가 비교적 덜했던 이원지역의 겉굴을 가져와 까서 팔아보지만 김장철이 끝나고 경제가 어려워서 인지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검은 기름덩어리가 태안해안을 비롯해 서해안을 덮쳐 3명의 주민들이 삶을 비관해 먼저 세상으로 떠났고 전국각지에서 123만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뜨거운 손길도 어느덧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12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싸우며 시작한 방제작업이 6월까지 계속되고 양식시설 철거작업, 반농반어의 농어촌에서 곡식과 가축들을 돌보고, 고기잡이 나서는 등 그 어느 해 보다 짧고 강렬한 1년을 보낸 태안주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씻겨 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서 6월달까지 일했던 마지막 방제 인건비가 이제서 나오고 피해보상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그나마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도 주민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없다.
지난 9월 연포해수욕장에서 팬션을 운영하는 한 주민이 각종 입증자료를 모아 피해보상을 신청해 50~60% 정도를 받고 합의했다는 소식과 함께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보상은 없다는 것도 주민들을 불만스럽게 한다.
주민들은 "기름유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해 3부요인을 비롯해 국가지도자들도 경쟁적으로 태안해안을 찾아 어떻게 태안을 도와야하느냐고 모든 것을 내줄 것 같이 말했지만 피서철을 맞아 이벤트성 공연외에는 제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답답해했다.
사상최대의 기름유출로 국가의 큰 도움을 기대하며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태안주민들은 1년 이 지난 지금 과연 뭐가 달라졌나 하는 의구심과 정부와 가해자격인 삼성중공업에 대한 불만의 싹이 하루하루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곁에 갯벌과 바다가 있듯이 궂은 날이나 바람이 불거나 일상처럼 갯벌과 바다를 찾는다.
늘 눈앞에는 바다가 있었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처럼 바닷가 주민들은 북서풍의 매서운 칼바람을 헤치고 갯벌과 바다로 나간다.
“놀면 뭐 한대유. 갯바닥에 나가 굴이나 개?이라도 잡아야 먹고 살지”라며 주민들은 오늘도 바다로 나가 거친 손마디를 재빨리 놀리며 갯벌속에서 삶을 찾고 희망을 캐내고 있다./태안=김준환 기자 kjh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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