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의 시「
▲ 김영택 문학평론가.목원대 대학원장 |
현대 우리의 삶에 가해지는 불행· 허무· 불안, 이러한 인생의 질곡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돌아보도록 유인한다. 때로는 현재의 안락함이 그것을 가져오기까지 축적되었던 지난 과거 속의 불행의 날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지난날의 모습은 돌아보는 자를 달콤함 속에 빠져들게 한다. “늘 반추하며 살아 온, 외로움과 그리움의 세상 인식을 여기에 담아 본다”고 시인은 밝히고 있다. 그는 불행한 과거를 기억하면서 더 불행한 현재의 허망한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고자 욕망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과거가 지닌 사건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자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과거의 단순한 돌이킴이 아니다. 기억은 늘 현실의 존재조건과 미래지향성을 담보한다. 기억은 현실인식을 전제한다. 현실은 언제나 과거와의 연속성 위에 존재한다. 현실의 참모습은 언제나 과거 속에 묻혀 있다. 그러하기에 현재의 진정한 존재에 대한 자각은 과거에 대한 기억에 기댈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란 이름에 상처를 입힌 것들, 인간성에 거슬리는 온갖 억압과 폭력의 실체들, 기억에 기반한 문학이 인식하는 과거란 항상 이러한 좌절의 국면들이다.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생성된 부정성을 문학은 기억코자 한다.
그것이 지극히 사소한 개인의 체험에 속하는 사안일지라도,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그것을 음미한다. 문학은 기억 저편에 있는 망각을 일깨운다. 망각의 늪은 인간에게 거듭된 악을 부추긴다. 인간의 역사에 망각보다 더 무서운 적은 없다. 이때의 망각은 가장 비인간적인 속성을 지닌다. 과거를 기억하는 인간은 미래의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늠한다. 역사 속에 누적되어 온 상처들은 결코 망각 속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 과거의 불행과 미망을 반복하는 개인이나 집단보다 더 어리석은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반추해 나가는 기억(記憶)은 서정양식보다는 서사양식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서정은 윤후명 시에서 보았듯이 기억이 가져오는 감정이지 기억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에 반하여 소설, 곧 서사양식은 기억을 진술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회상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회상 형식이, 작가가 체험한 가증스런 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어설픈 형상화 수준에 머문다거나, 우리의 현실사회와 철저히 절연된 채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여 대상을 신비화해 가는 것만으로는 감동을 드러낼 수 없음도 자명해진다.
따라서 기억으로서 문학이 삶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치밀한 묘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겨울로 치닫는 계절의 여울목에서, 정치적 갈등과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고,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주는 감동적인 작품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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