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핑계 저 핑계
▲ 변상현 조이소아병원장 |
자유스러운 나의 시간이 이렇다 보니 즐거움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즐거움은 고사하고 가족들과 대화나누기도 쉽지 않다. 문득 문득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나를 불량한 아빠로 만들어간다. 어느새 다 커버려 대화의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고 무정한 아빠에 버릇없는 아이들만 남았다.
요즈음의 젊은 엄마, 아빠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나싶다. 시간이 나면 어른 눈치 보느라 아이들과 단란한 시간을 가져 보지 못한 것 같은데.. 하루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진료실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어떤 날은 환자가 너무 많아 아무런 생각도, 인간적인 대화도 없이 기계처럼 진료하고 처방 내는 것으로만 하루를 보내는 적도 있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않은 일로 고초를 겪거나, 즐거워하거나, 보람을 느끼는 일도 많다.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모습만으로도 아이의 아픈 정도를 알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아픈 것이 귀찮다는 듯이 스스로 짜증을 부린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아픈 것이 자기 탓 인양 죄스러워 한다. 어떤 이는 아이가 아픈 것이 타인에 의한 것 인양 병원에 와서 부딪히는 사람들과 한판을 벌인다. 아이들도 다양하여, 진료에 전혀 무관심하게 몸을 내맞기는 아이도 있고, 문 밖에서부터 병원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아이도 있으며, 병원에 온 것을 즐기듯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아이도 있다. 어떤 이는 손자들을 돌보느라 힘겨워 하는 이도 있고, 손자들 돌보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으며, 손자 돌보는 것을 돈으로 사람을 사서 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기본 예의를 지키려 하지만 일부는 자기만의 권리를 주장하여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다.
아기 기저귀는 버리는 곳을 마련 해줘도 꼭 대기용 소파나 진료실 침대에 버리고 가는 이도 있고 깨끗한 시트 위를 신발신고 뛰어도 대견스럽게 바라만 보는 이들도 있다. 간혹 본인은 진료비를 다 내고도 고맙다고 음료수를 보내오는 이도 있고 아기가 먹던 과자를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는 애교 만점의 아기도 있다. 하루에 상대하는 아기와 부모를 합치면 수백명은 되겠지만 다 다른 특성으로 내가 사는 세상을 독특하게 꾸며 준다.
오히려 매여 있는 진료실 시간이 나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일 게다. 이들이 있어 내가 사는 세상은 항상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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