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 |
악기(樂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대저 음(音)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며, 악(樂)은 사람의 도리와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짐승은 귀에 들리는 소리(聲)는 알되 음(音)을 모르고, 뭇사람은 음(音)은 알되 악(樂)을 모르며, 오직 지덕(知德)을 갖춘 군자(君子)만이 악(樂)을 안다.” 이 구절은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서 악(樂)이 정서교육과 규범교육을 거친 인간을 조화로운 인격체로 만드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며 실체(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고 갈파한 공부자(孔夫子)의 설명과 안팎의 짝이 되어 보입니다. 또한 악기(樂記)의 첫머리에서는 성(聲), 음(音)과 함께 악(樂)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마음이 외부와 접촉하여 움직이면 소리(聲)가 터져 나오고, 그 소리들이 상응하여 가락을 이루면 음(音)이 되며, 그 음들을 잘 배열하여 악기(樂器)로 연주하고 의물(儀物)을 손에 들고 춤을 추는 데까지 이르게 되면 악(樂)이라고 부른다.” 즉, 악(樂)이란 노래와 악기연주 그리고 춤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악(樂)이라는 어휘 대신에 음악(音樂)이라는 낱말을 써왔으며 춤은 슬그머니 악(樂)의 개념에서 독립을 합니다. 하지만 음악이 없는 춤은 상상하기 어렵고, 춤이 결여된 음악은 허전합니다. 어휘야 어찌되었든, 노래와 춤과 주악(奏樂)은 늘 동행합니다. 지난여름 지구 반대쪽인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에서 악(樂)을 만났습니다. 애조 띤 노래(cante)와 격정적인 춤(baile)과 현란한 기타연주(toque)가 완벽하게 어울린 플라멩코(flamenco)였습니다.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드러내긴 했지만 삶의 애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감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민망한 몸놀림과 천박한 노랫말 그리고 시끄러운 전자음으로 얼룩진 요즈음의 우리음악을 악(樂)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우리 전통음악 속에는 전형적인 악(樂)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바로 제례악과 정재(呈才)입니다. 웅장하면서도 담박한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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