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여러 가지 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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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여러 가지 탈것’

  • 승인 2008-11-19 00:00
  • 신문게재 2008-11-20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벼슬과 재력의 상징인 가마 등급, 그리고 말(馬). 마패에 새겨진 말 숫자로 권세를 가늠했고 숫자만큼 역에서 말을 징발했다고는 하나 1마패, 2마패가 많았다. 몰래 공무수행 나간 어사가 말 무리나 줄줄 끌다간 행렬이 금방 탄로 났을 것 아닌가.


여러 가지 탈것
. ‘초딩’스러운 제목을 달아 그런지, 어려서 외운 천자문이 웅얼거려진다. 거가비경(車駕肥輕)…. 수레 거, 멍에 가, 살찔 비, 가벼울 경…. 말은 살찌고 수레는 가볍더라. 말이 살찌는데 수레가 어찌 가벼워? 옛 스승이 계셨더라면 회초리를 들었겠지만, 배기량이 크면 수레가 잘 나간다고 해석하기로 했다.

수레는 차(車)다. 지금 일부가 그렇지만 수레는 삼국, 그중 고구려인의 재산목록 1호였다. 덕흥리 고분 앞 동벽 행렬도를 보면 계현현령 수레와 유주자사 수레가 다르다. 자가용의 전통이 수레에서 가마로 바뀌면서 등급이 엄격했다. 연(輦)은 왕과 왕비, 덩[德應]은 공주, 평교자(平轎子)는 종1품 이상 정승급, 사인교(四人轎)는 판서급, 초헌은 종2품 이상, 남여(藍輿)는 정3품의 승지와 참의 이상이 탔다. 뒤로 갈수록 ‘배기량’ 규정은 쉽게 범해졌다. 도성 문을 나선 고을 수령은 눈치껏 쌍가마에 올라 어머니와 부인을 태웠다. 여인들이 쌍가마 타기를 필생의 소원으로 삼았을 법하다. 승차감이 나빠 턱을 씹히는 한이 있어도 초헌을 타고, 보교(步轎)나 새끼가마(승교)라도 타면 벼슬이었다. 가마는 관원의 위세와 위계질서 자체였다.

그러나 금령은 무
시됐다. 부모 덕으로 벼슬하는 낙하산 음관은 가마를 못 타게 다스렸으나 허사였다. 기생도 장죽 물고 가마를 탔다. <의유당일기>의 판관 부인 남씨가 쌍가마에 군악 앞세워 동해 일출을 본 것은 규정 위반이다. 연산군은 관료와 유생, 사헌부 관리에게 연을 메게 해 야코를 죽였다. 나중 민간도 가마를 탔는데 12인교까지 출현한다. 사람 사는 데 법과 비리 있는 것은 고금이 같다.

오늘의 문제는 관용차량이라는 가마다. 재정자립도 12% 지역의 군수 차량으로 배기량 3342㏄급으로 사들여 탈나자 공개 매각에 나선 경우가 있다. 어떤 구청장은 고급 차로 바꾸려다 구의회 반대로 취소했다. 6500만원 상당인 3800㏄급 의전 차량이 안 팔리자 렌터카를 쓰는 것이 예산 낭비 아니면 좋겠다.

가뭄에 콩 나듯, 의전 차량 구입 예산을 자진 반납(원주시장) 또는 삭감 요청(여수시의회 의장)한 사례도 있다. 다음주 에너지 절약 우수기관 표창을 받는 공주시는 관용차량으로 경차 41대를 구입했다. 장관급 3300cc, 차관급 2800cc의 배기량 권고기준처럼 단체장 차량 제한 얘기가 불거지지만 시도지사 2500cc, 시장·군수 2000cc 미만 등의 종전 규정 답습이 꼭 합리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직위 고하에 따라 가마를 차등 두는 교여지제(轎輿之制)나 가마단속 같은 게 ‘차(車)별대우’ 시대에 안 맞다 하기 전에 그 차가 금쪽 같은 세금으로 굴러감을 생각해 먼저 허리띠 졸라매는 모습이 아쉽다. ‘작은 마음 통제하기를 육마(六馬) 부리듯 하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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