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매 해 11월은 정말이지 하루가 멀다하고 김장 김치를 맛 보았었다. 김장 품앗이는 동네 골목을 중심으로 아파트 라인을 중심으로 한 달 내내 이어졌으며, 어머니는 김장 품앗이를 다녀올 때마다 그 날 담근 그 집 김장 김치를 조금 집에 가져와 우리 저녁상에 올리곤 하였다. 같은 배추, 같은 무, 정말 똑같은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것 같은데 집집마다 김치의 맛은 다 달랐다.
어머니도 어머니만의 김치 맛을 내기 위한 비법 아닌 비법이 제법 있다. 달콤하게 익은 연시의 씨를 빼서 그 속을 김치 속에 섞어 버무려 넣으면, 김치는 설탕의 단맛과는 다른 깊은 단맛이 난다. 다시마와 멸치, 황태 머리를 푹 고아 만든 육수를 부어 김치를 담그면, 감칠맛이 두드러지게 좋고, 동치미에 들어갈 마늘과 생강 조각들을 커다란 배추잎에 싸서 넣으면 동치미의 시원한 맛이 남달라진다. 또한, 아버지가 겨우내 즐기는 갈치김치를 만들기 위해 싱싱한 생갈치를 손질해 두는 것도 우리집 김장 절차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어머니만의 김치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김장 품앗이에서도 그대로 그 맛이 유지되었다. 동네마다 이맘 때 있는 김장 품앗이의 미덕은 여러 사람이 모여 한 집 김장을 담그지만, 그 집 김치의 개성과 집주인의 입맛을 존중하여 집마다 다른 김치 맛을 그대로 지켜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생갈치 김치가 마뜩찮아도 함께 쓱쓱 버무려주고, 젓갈 냄새가 싫어 새우젓만 조금 넣는다해도 담백하다며 반겨주고, 쇠고기 육수를 넣은 김치도 색다르다며 배추속 쌈을 맛보는 그런 넉넉한 태도와 마음, 내가 평소에 익숙하지 않았던 다른 김치의 맛과 향을 받아들이는 “다름”에 대한 열린 마음 말이다.
이제 한국의 김치 맛은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더욱 달라지고 다양해질 전망이다. 김치뿐 아닌, 모든 한국 음식이 낯선 결혼이주여성이 담근 김치는, 어머니가 담근 동치미와도 다르고, 앞집에서 담근 해물김치와도 매우 다른, 새로운 어떤 것일게다. 필자도 유학생활 중에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총동원한 “듣도 보도 못한” 김치를 자주 담궈 먹었었다. 그래도 이국땅에서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마음에, 내 김치를 새로운 맛이라고 호들갑떨며 먹어주는 파란눈의 친구들 덕에 더욱 맛있었다.
또 김장철이 되었고, 이집 저집의 다채로운 김치 맛을 볼 때가 왔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담근 “듣도 보고 못한” 새로운 김치 맛도 넉넉한 마음으로 맛봐야 할 때인 듯 하다.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게 된다. 김장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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