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인 충남대 교수 |
딸들아! 지금 너희 눈에도 저 푸른 하늘과 투명한 햇살이 비치느냐? 아니면 흐릿하고 불투명한 영상만이 머릿속에 얽혀 있느냐? 짧게는 고교시절 3년을, 길게는 초등학교 입학부터 12년, 아니 유치원 때부터 따지면 15년을, 오직 오늘 하루의 시험을 조준해 달려온 너희들이 아니더냐? 부디 차분하게 최선을 다하고 우주의 큰 숨 신선하게 들이키는 저녁을 맞자꾸나.
딸아, 아들아! 너희들이 긴장하며 시험문제를 푸는 동안 우리 아빠 엄마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회록을 써야한다. 우리는 20년 가까이 너희들을 키우면서 너희의 인격과 인권을 생각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개성과 소질을 살피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너희를 돌격선에 매복한 전사처럼 여기고 돌격 명령과 진군의 호령만 드높였었다.
국제 경쟁력 있는 교육, 창조적 인재양성이라는 구호는 있었으나 너희에게 연습시키는 것이라고는 늘 ‘넷 중에서 하나 고르기’ 아니면 ‘다섯 중에서 하나 고르기’였다.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면 ‘너는 왜 그래?’하면서 윽박질렀고, 개성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면 ‘버릇없는 녀석!’이라며 창의적 사고의 뿌리를 잘랐다. 세상살이에는 여러 길이 있을 뿐, 정답이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구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 손으로 너희 손을 잡고 보듬어야 했으나 지시만을 했고, 우리 눈으로는 너희를 더 많이 바라보지 않고 대신 시계바늘만을 쳐다보며 초조해 했다. 집과 건물은 세울 줄 알았지만 너희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다. 오죽하면 ‘엄친아’(이른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잘나가는 엄마 친구의 아들)라는 지긋지긋한 유행어가 생겼겠느냐.
‘특목고’나 ‘자사고’로 입시경쟁을 10대 초반으로 끌어내렸었는데 이제는 ‘국제중’의 개교 운운하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경쟁의 나락으로 내몰면서 우리 엄마 아빠는 광기의 파도에 휩쓸렸구나. 알고 보면 웃어가며 도와가며 동행해야하는 친구들인데 모두를 경쟁자요 적으로 만들면서 너희에게 ‘글로벌 리더’가 되라고 주문을 했구나.
먼 나라의 대통령 당선자가 어려운 청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포용력 있는 그 나라의 교육제도 덕분에 제대로 자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타국의 전설일 뿐인 오늘. 아빠는 사실 저녁 이후가 또 두렵다. 시험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각종 언론사와 방송사는 소리를 높일 것이다. 금년 시험의 난이도는 어떻고, 예상 평균 분포도는 어떻고, 인문계와 자연계의 편차는 어떻고...
어디 그 뿐이랴. 하루 이틀 뒤면 신문 지면에 전국의 대학과 학과가 한 줄로 서게 되리라. 그러면서 또 우리 엄마 아빠는 너희를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의대, 혹은 로스쿨이나 법대 입학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시작해 정말 비교육적이고 반교육적인 선택에 골몰하리라. 여전히 소질과 적성은 안중에 없으리라. 이제는 쉬고 싶은 너희에게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며, 대학에 가서 놀라며,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흘리리라.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내신, 수능, 논술이라는 족쇄는 너희를 옭아매는데 엄마 아빠는 너무도 무감각하고, 무력하고, 곧잘 잊기까지 하는구나. 많은 이들의 일상이 자녀 교육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막상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 모든 허물을 아빠는 오늘 반성하고 사죄하고 싶다.
몇 년간을 묵묵히 참아온 아들아, 딸아! 그래도 너희가 젊기에 희망을 접지는 않으련다. 그래도 너희를 믿기에 얼굴을 펴련다. 너희가 느끼는 우리 교육제도의 질곡을 부디 망각하지 말아라. 너희도 머지않아 어른이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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