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 |
아직 세 돌이 채 못 된 손녀는 볼 때마다 쏘옥 쏘옥 자란다. 하루만 지나도 또 커있는 것 같아 보인다. 세상 꽃 가운데 제일 예쁜 꽃이 손주라고 하더니 내가 요즈음 그 어여쁜 꽃향기에 듬뿍 취해있다. 그 예쁨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손녀는 말도 크고 생각도 커서 할아버지를 일부러 사랑하려는 마음까지 보인다. 얼마 전만해도 나를 보면 조금 쑥스러워하고 말을 걸을까봐 뒤로 살짝 숨더니 요즈음은 유독 내게 말을 많이 걸어준다.
“할아버지 뭐해요? 할아버지 어디가요? 할아버지 신발은 커요?...”
그 어린 아이가 특별한 교육과정이나, 훌륭한 교사, 뛰어난 교재도 없이 어쩜 저렇게 많이 저렇게 빨리 배워 가는지? 도대체 무엇이 그 많은 내용을 그렇게 쉽게 잘 배워가게 하는 것일까?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이제 세상에 온지 고작 삼십여 개월 지났을 뿐이지만 이제는 제법 어른과의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력도 아주 놀랍기만 하다.
손녀가 세상 배우기에 그렇게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는 바탕이 무엇인가 정말 궁금하여 더욱 사랑스런 마음으로 그 애를 조심조심 바라보았다. 그렇게 마음을 두고 바라보았더니 손녀는 무작정 아무것이나 마구 물어오는 것이었다. 아니 함께하는 시간이 굳이 오래지않아도 그 애는 보자마자 묻기 시작해서 숨 쉴 틈도 없이 묻고 또 묻는다. 대답해주는 것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하는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던 끊임없이 물어온다.
“할아버지 이거 뭐야? 할아버지 신문 봐요?...”
신문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도 그 애는 물음표를 넣어 말을 걸었다. 그렇다, 그 애는 모든 것에 신기해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묻고 또 물었다. 그 애는 그렇게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주변의 사물들을 교사로 삼고 배우는 어린애의 그 따뜻하고 맑은 시선, 바로 그것이 놀라운 성장의 힘이었다.
수많은 발전을 거듭해온 인류는 오늘날 최첨단의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다지만, 갈등과 혼란 그리고 고뇌들은 갈수록 크고 복잡해지면서 행복지수는 점점 낮아져간다고 인류학자들은 말하며 염려하고 있다. 굳이 인류학자가 아니고 특별히 연구보고서를 읽지 않아도 사회가 점점 갈등이 심해지고 인간관계의 따뜻함이 무너져가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느끼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바르게 살아가는 바탕으로 공자는 인(仁)을, 예수는 사랑을, 부처는 자비를 지니라고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또 훌륭한 어떤 이는 근면이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성실, 누군가는 정직 또는 책임, 열정 등 수많은 삶의 지혜를 깨우치고 배워왔다. 이런 지혜와 도리를 배워 익히고 정립해가는 것은 결국 나와 너 우리 모두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길이었으리라.
나도 육십 여년너머까지 학문에 전념하여 진리를 깨우치고 지혜의 깊이를 더해보고자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손녀와 함께하는 이 시간만큼 세상에 대해 밝은 눈을 뜨고 제대로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은 내 기준이나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며 내가 보고자했던 것만 바라본 집착과 욕심의 육안(肉眼)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가 이제야 비로소 손녀딸을 통해 불가에서 말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는 심안(心眼)을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 살 손녀 아이의 맑고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니 비로소 아름답고 따스한 세상이 거기에 있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만들어낸 꿀을 퍼가는 벌에게 가만히 보내는 장미의 붉은 미소, 이름 모를 산새에게 나무 가지 한구석을 내주어 둥지를 마련하게하고 대견해하는 나무의 넉넉함을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떠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주변 사물들을 교사로 삼아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지혜를 배워가는 손녀딸의 그 따뜻하고 맑은 시선, 바로 그 눈이 심안이 아닐까싶다. 그 애의 맑은 시선을 따라가며 나도 가까이 있는 아내와 가족, 그리고 이웃한 사람과 저 멀리 있는 사람 모두에게까지 따뜻한 관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편견 없는 맑은 눈을 떠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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