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장 |
처녀시절 눈이 맞은 남자를 저택에 공연하러온 경극단에서 만나면서, 굶주렸던 그녀의 리비도가 봇물처럼 터지고, 두 사람의 밀회는 결국 둘째에게 들통 난다. 주인에게 고하자, 격분한 군주는 두 남녀는 물론, 밀고한 둘째까지 처형하고 만다. 중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에 더하여 천재적 연출과 뛰어난 영상미로 흥행은 대박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봉건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다는 주장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정권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도전이 금기인 일인독재체제 하에서, 노선의 이탈은 곧 죽음을 의미하고, 이탈 여부의 최종판정은 오로지 일인자에게 달려있다. 문화혁명 당시 당료들의 모 주석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서열다툼을‘풍자’하는 의미는 없었을까?
현대 발레‘홍등’을 제작한 장예모는 스필버그보다 행복하다. “올림픽 개막행사를 대신 맡았다.”거나“가난 속의 부귀는 더 달콤하다.”그런 뜻이 아니라, 전혀 비전문분야인 현대발레를, 그것도 원작이 자신의 것이기에 맘껏 수정해가며 연출하는 특권을 누렸기 때문이다. 70여 국립중앙발레단과 역시 70여 전속오케스트라가 규모와 화려함에서 관객을 압도하고, 무용수들의 멋진 체격과 뛰어난 기량은 세계 어느 발레단에서도 볼 수 없는 자랑꺼리다.
그러나 자로 잰 듯한 키와 기계적인 정확성은 군무를 군무(軍舞)와 같은 획일성으로, 중국문화를 지나치게 나열한 화려함은 성장한 여인의 들뜬 화장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특히 화복을 입은 발레리노의 동작은 둔하고 축이 불안정하며, 전통악기 소리는 신비하지만 특유의 끌림이 때때로 정밀한 동작과 엇박자의 느낌을 준다. 결국 이 작품은 발레가 아니라 8할이 중국 전통예술인‘퓨전 발레 극’이다. 다만 현대가 요구하는 오락성이 뛰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감상 포인트인 장예모의 천재적 감각 몇 가지.
1막 초야장면과 4막의 춤에 그림자를 쓰되, 전자는 조명의 빠른 원근변화로 사랑 없는 신부의 혼란을 극대화하고, 후자는 그림자의 농담차이로 수묵화적 입체감을 살렸다. 종이가 뚫어질 때는 파과(破瓜)를 유감하고, 4막에 장방형의 배경을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냉정한 조망효과로 사용한 뒤, 봉건잔재를 타파하는 몽둥이의 난타로 그 위에 붉은 추상화를 그린다. 감옥을 철창 다섯 개의 그림자로 표현한 것도 멋지다. 천재감독의 그림자놀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대전문예전당 조명 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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