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그러면서 불림소리(탈춤을 출 때 앞에 부르는 소리)를 제법 구성지게 열어젖힌다. 이어 척 들어가는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첫 동작이 몇 십 년을 추어온 할아버지 선생님들의 몸짓이 그대로 배어나온다. ‘헉’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아이의 춤에 빠져들어 가는데 춤에 대해 경험이 일천한 우리들의 눈에도 이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이후 춤사위 마다 손끝하나, 발 뜀 하나에 호흡을 같이 하면서 몰입되다가 춤사위가 잦아들면서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을 수 가 있었다.
그 아이는 요즘처럼 진학을 위해 부모님들이 성화를 부려 어쩔 수 없이 배우러온 아이도 아니고 선생님들이 억지로 데려다 가르치려고 한 것도 아니란다. 자주 놀러와서는 어른들 춤추는데 뒤에 서서 흉내를 내더니 이젠 웬만한 어른들보다 몸짓이 좋아졌다고 기뻐하신다.
이 아이의 몸속에는 그렇게 우리 춤을 제대로 구현하는 유전자가 오롯이 전승되어 오는 것 같다고도 하신다. 그러면서 또 다른 걱정을 덧붙이신다.‘저 애가 다른 걱정 없이 우리 춤에 전념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젊은 사람들이 많이 노력해 달라’신다. 맘껏 끼와 재능을 펼쳐 더 나은 예술이 넘쳐나는 세상을 이야기 하신다. 그런 ‘쟁이’들이 맘 놓고 자기 것에 매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그랬다 문화 예술을 지키고 삶속에 같이 하려는 사람들, 특히 기초예술분야를 지키고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사회적 조건에 밀려 자꾸만 떠나게 되는 현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더구나 최근에 들어서서 신자유주의가 시대를 관통하면서는 문화도 효율성과 산업적 경쟁력이 강조되어 다른 산업 대비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가 주 관심사다. 판단의 주체나 기준도 모호하지만 효율성이 없다고 평가되면 과감히 지원이나 관심을 배제해 버리는 실정이다. 그 효율성도 문화적 접근 방법이 아닌 산업적이거나, 행정적 접근 방법을 동원해 판단하는 실정이니 그 효율이라는 너울에 문화예술인들이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대형 프로젝트화 되는 문화행위만 살아남게 되고 작지만 문화예술의 발전엔 유의미한 기초 예술 활동은 외면되어 정작 중요한 예술의 기초는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 새로운 세기에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한다고 하는 모든 계획에 보면 장기적으로 도시나 국가의 경쟁력은 ‘문화’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씨알에 대한 장기적 투자는 배려하지 않고 있다. 기초바닥을 튼튼히 하지 않고 집이 올바로 세워지겠는가? 우리지역의 품격 있는 문화가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다. 지금의 현실은 이전에 그렇게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이다. 미래에 품격 있는 도시, 문화가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도시, 아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문화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에 정책적 배려와 함께 지역민의 꾸준한 관심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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