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종별 : 시 민속자료 제2호
시대 : 조선시대
동춘당 공원을 거닐다보면 안채와 사랑채, 넓은 대청이 있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살기 시작해 현재 11대손까지 살고 있는 송용억 가옥이다.
또 17~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줄만한 여류 문인인 호연재 김씨가 살았던 곳이기도 한데 송병하의 며느리인 호연재 김씨는 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담은 많은 시를 남겼다.
가옥의 입지형국은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 가묘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인 소대헌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 사랑채인 오숙재가 있으며 큰사랑채에는 넓은 대청과 온돌방을 배치했고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다.
안채 앞에 위치한 작은사랑채는 오른쪽 끝에 툇마루를 한단 높게 두어 운치를 살렸는데 사랑채가 2동이나 있어 사랑채의 기능이 확대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사랑채의 기능이 커진 것은 이 가옥이 지역의 문화적 중심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기도 하다.
“月沈千 靜(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泉暎數星澄(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竹葉風煙拂(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梅花雨露凝(비이슬 매화에 엉긴다)生涯三尺劍(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心事一懸燈(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調帳年光暮(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衰毛歲又增(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지금은 허난설헌과 견줄 만큼의 여류 문인으로 평가받는 그녀지만 남존여비의 서슬이 퍼렇던 조선시대 사대부가 며느리로서 감내해야했던 삶의 무게는 ‘석자의 시린 칼’처럼 지중했을 것이다.
동춘당 공원을 뛰어다니는 수많은 딸과 이 시대 며느리들을 바라보는 호연재의 마음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박은숙 시민기자.영상 금상진 기자
※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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