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중추장애인으로 10여년간 작품 활동을 해왔던 김준식 씨는 그의 스승인 자헌 이성순 선생님을 이렇게 자랑했다.
자유롭게 손을 쓸 수 없는 김 씨는 붓을 손에 묶고 ‘있는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김 씨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하는가 하면 자포 자기 한 삶을 살았지만, 자헌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그림 그리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목적이 생겼다”고 말하는 김씨에게 자헌 선생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절망 속에 빠져있는 장애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맡아온 ‘천사’ 이성순 화백은 20여년 전 장애인 선교를 시작으로 장애인과 인연을 맺었다.
신학을 전공한 전도사로 사역을 해왔지만, 사역을 그만둔 그에게 장애인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우연히 ‘장애인 일을 돕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고, 원명학교 농아들에게 연극과 노래를 가르쳤다.
자헌 선생은 대입 전까지 미대생을
▲이성순씨 |
신학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개인전시회를 열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작품 활동을 해왔던 작가였다.
본인의 재주를 숨길 수 없었던 자헌 선생은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장애인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직접 집을 방문해 그림을 지도해주고, 신체적으로 힘들어하는 장애인들의 인도자 역할을 했다.
20여년 간의 장애인 지도자 역할로 수십여명의 장애인 작가들을 탄생시켰다.
벌써 10년째 그의 제자들이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는 ‘자헌 묵연전’에도 많은 장애인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자헌은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과 다르게 지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인아라는 편견으로 작품을 더 훌륭하게 본다거나 대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는 무서운 선생님이기도 하다.
20여년 간 장애인 지도를 하면서 가정생활에 소홀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처음에는 남편의 불만도 많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 남편과의 갈등이 컸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훌륭한 후원자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자헌 선생의 딸을 장애인 학교의 특수교사다. 학창시절 방학이면 장애인 캠프에 참가한 자헌의 자녀들은 직접 목욕봉사를 하는 등 온가족이 장애인 봉사를 했다.
장애인 봉사와 함께 최근에는 프랑스,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세계를 돌며 예술 활동을 통해 북한어린이 돕기 등 봉사활동과 더불어 한국 알리기 활동에 나서고 있다.
소외지역을 찾아 그림으로 한국을 알리고,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이다.
앞으로는 장애인 작가들도 동행해 한국화 알리기에 나설 계획이다.
앞으로의 꿈이 ‘장애인 예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헌 이성순 선생은 어떤 갑부보다 행복한 얼굴을 갖고 있다./김민영 기자 minyeong@
(이영상은 JDTV에서 고화질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jdtv.joongdo.co.kr/jsp/jdtv.jsp?movie_code=20081114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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