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수 대전시교육청 장학관 |
역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18세기 계몽주의 역사학자인 랑케(Leopold von Ranke)의 ‘역사학의 본질은 역사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20세기 역사학자인 카아(E.H.Carr)의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주장이다. 랑케는 역사의 객관성을, 카아는 주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은 ‘역사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역사로서 가르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것은 역사교육의 목적이 역사 사실 자체를 가르친다기보다 역사 사실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과거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고, 이를 기초로 역사적 사고력과 통찰력을 신장시키며, 바람직한 역사적 가치관과 태도를 함양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역사교육은 랑케보다는 카아의 주장대로 주관적 관점이 중시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사사실을 가르칠 것인가와 어떤 방향으로 가르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역사교과서의 집필 방향과 서술 내용, 그리고 역사교사의 지도방법이 문제가 된다.
교과서에는 집필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주관은 집필자의 신념인 동시에 시대적 산물이다. 문제는 서술방향이나 내용이 얼마나 시대적 관점, 즉 일반의지를 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여러 단체에서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공감되는 부분도 있는가 하면, 타당성이 약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쟁점화된 사안이니 만큼 개인적인 검토보다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과서는 집필자의 주관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까지 담아내야 하고, 학생들의 역사적 가치관 형성을 위한 내용까지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들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교과서 재선정을 둘러싼 학교의 부담도 덜어질 수 있다.
다음은 역사 수업의 문제이다. 몇 년 전 어느 선생님의 시범수업을 보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국사수업이었는데 교과서에 한 줄 밖에 나오지 않는 친일파에 대하여 한 시간 내내 그들의 명단과 행적, 반민족적 행위와 정부 수립 참여 등에 관해 동영상을 시청하고 열띤 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보면서 수업방법은 참신하였지만 친일파가 과연 한 시간이나 다루어야 하는 주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하여 친일파를 자세히 알게 될지 모르지만 일제시대 하면 가정 먼저 친일파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따라 가르쳐야 하는데 지나치게 수업 내용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교육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잘못된 교과서 집필보다 더 큰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
역사는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만이 아닌 미래까지를 보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에 대한 철저한 이해 속에서 과거 사실에 생명을 불어넣고,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교과서의 서술에 균형을 유지하고, 신중한 역사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들은 완전한 성인이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고, 역사는 지식보다 의식을 가르치는 과목이어서 그들의 잘못된 역사 의식이 우리사회에 좋지 않은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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