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백겸 시인, 한국작가회의대전.충남 지회장 |
풀어놓기만 하면 시는 먼 곳의 풀과 물을 찾아가는 얼룩말처럼 스스로 도약해서 초원을 질주한다. 그런데 이 울타리의 빗장을 열기가 어렵다. 언어를 사육해서 세계를 길들인 의미와 가치가 내가 경작한 수확물이며 재산이라는 자부심과 탐욕을 버리기가 어렵다. 밧줄을 놓으면 독사가 우글거리는 구덩이에 빠지기를 겁내는 중생처럼 죽어라 빗장을 놓지 않는다. 이런 경우 밧줄을 스스로 결단해서 놓거나 밧줄이 삭아서 끊어지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오랫동안 시와 떨어져 있었던 내 경우 밧줄이 탐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끊어졌다. 다시 말해 나는 실존의 위기를 불러오는 심연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어졌다. 시는 이렇게 해서 나에게 다시 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세계를 움직이는 큰 질서는 확고부동하다. 천체의 운행이 그 증거인데 그 거대한 물(物)이 시간의 입장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간의 입장에서는 삼라만상의 상품을 벌려놓은 거대한 백화점시스템으로 탄생과 죽음의 쇼핑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입고와 출고 시스템의 균형이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고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원회귀로서의 세계는 소비된 상품을 수거해서 재생산에 들어가며 11차원에 걸친 초 끈으로 관계를 맺고있는 사건은 에너지불변의 법칙아래서 음양의 소장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개인의 심장에서 시는 짖는 개소리처럼, 어느 자연의 풍경에서 시는 부는 바람소리처럼, 어느 문명에서 시는 기차가 지나가는 바퀴소리처럼.
시는 자기를 주장하는 소리를 낸다. 세계여 나를 좀 보아달라고. 당신의 눈길로 내 자아를 한번만 기쁜 눈길로 보아달라고. 내가 이 시공에 태어난 의미와 가치를 당신의 사랑으로 확인해 달라고 호소한다. 호소로서의 소리와 파문은 허공에서 일어나서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 허공은 암흑물질로 가득 찬 신비한 에너지가 작동하는 곳이다. 그리나 그 파문은 겉으로는 침묵으로 흡수되며 말하지 않으나 사실은 모든 말씀을 완벽하게 말씀하고 있는 언어도단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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