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가을 남자, 가을 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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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가을 남자, 가을 여자에게

  • 승인 2008-10-30 00:00
  • 신문게재 2008-10-3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청원 문의면 부근 숲길에서 가을에 핀 진달래꽃 한 송이를 만났다. 반가움이랄까, 쓸쓸함이랄까. 누군가가 “바람난 꽃”이라 했다. 모든 것은 제철에 피어야 아름답다.
지금은 철철이 보는 장미지만 전에는 봉숭아나 접시꽃만큼도 대접받지 못했었다. 그저 돌담에 기대 핀 여린 꽃이었을 뿐. 옛날에야 복숭아꽃과 살구꽃, 배꽃이었다.


그중 복숭아꽃은 예뻐함이 지나쳐 요염한 손님(요객)이라 했고 그것이 발전해 도화살(桃花煞)이 나온 걸 봐도 확실히 사람의 심미적 기준은 변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가을에 대한 감상만은 선인들과 우리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원적으로 가을의 모태인 ‘가을하다’는 ‘추수하다’이다. 농작물 거두는 때라는 느낌은 농경사회 그대로는 아니나 정회는 비슷하다. 우리의 향가, 일본의 만엽집이나 중국 당시를 읽노라면 정서상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특히 고대 동북아 삼국은 가을을 매개로 서정을 공유함을 알게 된다. 가을바람을 배경으로 이성에 대한 가슴 아린 그리움을 읊조린 글도 많다. 남자가 가을 타는 얘기도 오래됐다. 봄에는 여자가 사랑을 느끼고 가을에는 남자가 슬픔을 느낀다 한 것이 기원전 2세기에 나온 회남자였다. 남자 65%, 여자 47%가 가을을 탄다는 요새 여론조사가 근 2200년 전 기록을 뒷받침해준다.

음양학적 사고로도 봄은 양기, 가을은 음기 충만의 계절이다. 여름내 양의 기운에 젖은 남자가 음의 기운을 받고 싶어할 때가 바로 지금. 그냥 외롭고 쓸쓸한 가을 남자들이 원하는 것 역시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거쳐보면 51%가 사랑이다. 가을에 아내나 애인과 성적인 접촉을 늘린다는 남자가 실제로 35%에 이른다.

반대로 가을은 여자가 더 탄다고도 하는데, 계절성 감정장애가 여자가 남자의 4배라는 점에서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사이토 시게오의 소설로 유명해진 ‘사추기(思秋期)’도 여자들의 것이다. 자녀를 다 내보낸 주부들이 ‘나는 그동안 어떤 존재였는가’에서 출발하는 빈 둥지 증후군도 삭풍 몰아치는 가을같이 심할 때가 없다.

놀이 중 사람을 제일 들뜨게 하는 건 불륜이지만 그런 것과 담쌓고 산 아내, 노는 것을 범죄처럼 여기던 어머니들이 문득 가눌 길 없는 허무함에 쉽게 빠지는 것도 이맘때다. 언젠가 썼듯이 누구나 가을을 타고, 여자를 타고, 남자를 탄다. 이럴 때, 남녀 공히 이 가을의 필수품은 사랑이라는 결론에 다시 도달한다.

가을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자살은 봄(5월), 여름, 가을, 겨울 순이지만 운수사고 사망은 가을철(10∼11월)이 가장 많다. 이혼율은 10월과 11월에 높다. 인스턴트 식 일탈, 금지된 사랑도 조심할 때다.

올 가을은 경기 침체 징후인지 옷보다 립스틱이 잘 팔리고 길고 느린 노래가 유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야하지 않은 립스틱 없고 가을에 안 어울리는 노래 없다. “실수로 스텝이 엉기면 그게 탱고란다. 실수로 넘어지면 그게 바로 삶이란다.” 학교 가는 아이들이 내 차에 탔기에 들려준 <여인의 향기> 대사다. 이제 날이 추워진다. 가을이 후딱 지난다고 하늘에 주먹감자 먹이는 일은 없도록 하자.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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