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
최소한 지휘자가 몰입에서 깨어나 인사할 때 까지 한 박자 쉬었다가 치는 박수가 한층 더 사려 깊은 예의라고 믿는다. 반대로, 쳐서는 안 될 악장과 악장 사이의 박수를‘모른다 박수’라고 부르자. 한두 번 치다가 주위가 조용하니까 머쓱해서 뚝 그치면 무사하지만, 뒤질 새라 너도나도 따라오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남이 하면 따라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도 일종의‘빨리빨리 병’이다.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그랜드페스티벌의 빅스리 중 하나인 밴쿠버 심포니(VSO).
VSO의 전원(全員)연주는 보다 이름난 악단의 3/4 연주보다 훨씬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 첫 곡은 캐나다 젊은 작곡가 라이언의‘빛의 선’으로, 2003년 초연된 따끈따끈한 현대음악. 고전음악보다 더 고전적인 유니슨은, 모차르트가 칭찬할 강약의 조절과 바그너가 감탄할 속도의 통제가 어우러진 불협화음 속의 유포니요, 특히 표제인‘빛’의 생명 즉 명암을 강약으로 잘 살려낸, 지휘자 토비의 명품지휘였다.
“이건 군인 같은 정밀함이다.” 옆에 앉은 시향 콜로메르에게 말하니 대답은, “Sure!” 역시 현대음악인‘투랑갈릴라’지휘를 하루 앞둔 벤치마킹(?)이었을까?
얼마 전 공연리뷰에 쓴 Military Precision라는 단어는 이때 느낀 표현이다. 둘째 곡은 힐러리 한의‘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전에 내한했을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해 맘에 걸렸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공들여 현을 애무하는 듯한 보잉으로 근래에 드문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였다. 2악장이 끝나자, 아차!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힐러리가 돌아서서 살짝 무릎을 굽혀 답례한다. 느닷없는‘모른다 박수’를 애교로 받아넘긴 두 번째 선물. 곡이 끝난 뒤 현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자 콜로메르의 대답은,“She‘s a Natural!” 그녀의 세 번째 선물인 앙코르는 바흐의 Giga 였다.
2부는 환상적인 선곡(選曲)의 마무리인 베를리오즈‘환상 교향곡’. 2악장 끝에 무도회의 흥분이 갈아 앉는 순간, 아뿔싸! 두 번째‘모른다 박수’다. 목가적인 3악장에 앞서 호흡을 고르던 토비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한다. 4악장 뒤에 이날의 결정타인 세 번째‘모른다’가 터졌다.
5악장의 존재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토비의 표정은 드디어“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였다. 다행히 가장 베를리오즈다운 5악장이 환호 속에 끝났지만, 세 차례의‘모른다 박수’는 페스티벌의‘옥에 티’였다. 그러나 부끄러울 것은 없다. 지난 6월 서울에서는 6 연발로 터졌다니까. 다만 재발 방지를 위하여, 한 박자 기다리는 여유만은 꼭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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