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 책임기술원 |
이런 가을 기운을 느낀 지가 요 몇 일전부터 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나뭇잎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지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골목길에 흩어져 있는 낙엽을 치우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연구원에서도 아침 출근시간대가 되면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주차장과 건물 주변 도로에 쌓인 나뭇잎들을 치우느라 수고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왠지 애꿎게 느껴진다.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웬만한 사람들에게 호사를 선사하는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도 낙엽이 되어버리면 애물단지가 되어 무고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단풍나무와 낙엽을 보며 교차하는 묘한 감정 속에서 생뚱맞게 ‘참조표준’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거의 모든 연구 활동은 측정을 매개로 하고 있으며, 또 그 결과로 데이터라는 가치 있는 것들을 생산해 낸다. 아마 과학기술분야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이러한 측정데이터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해 국가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믿고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료가 ‘참조표준’이다. 이를 위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에서는 플라즈마 물성과 금속소재 역학특성, 반도체 열물성, 심뇌혈관, 유전체 생명정보 등 국가전략산업과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분야에서 국내외 과학기술데이터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전거점을 경영하던 라이트(Wright) 형제가 1903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것은 정확한 측정데이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라이트 형제는 당시 글라이더 비행으로 유명했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이 만든 데이터를 이용하여 비행기의 날개를 제작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충분한 양력을 얻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들은 풍동을 직접 제작하고 수많은 실험을 통해 정확한 양력데이터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를 통해 라이트 형제는 몽상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거대한 물체의 동력비행에 성공할 수 있었고 미국이 항공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처럼 정확한 측정데이터는 기술혁신을 위한 핵심적인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현장에서는 수없이 많은 데이터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것들은 붉은 빛 한번 머금지 못하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라져 가고 있을 것이다. 문득 귀에 익숙한 속담 한마디를 생각해 본다. ‘구슬이 서 말이면 무엇하랴,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을.
지식과 정보가 사회적 부의 원천이 되고 생산성 향상과 혁신의 기반이 된다는 피터 드러커의 난해한 주장이 아니더라도, 깊어가는 가을에 바라보는 아름다운 단풍나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낙엽, 그리고 귀에 익숙한 속담 한마디에서 설익은 지혜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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