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현 한국주택금융공사 대전지사장 |
지난주 국감 때 모 의원은 당분간 금리가 고공행진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 금리가 내리는 시점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이 손해 볼 것이 뻔한데 어째서 주택금융공사가 고정금리만을 고집하느냐고 다그쳤다.
일견 타당한 듯하지만, 변동금리란 기본적으로 대출기간의 금리변동위험을 채무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란 사실을 깜빡 잊고 한 말이다.
쉽게만 생각되는 주택담보대출도 따지고 보면 다음의 3가지 선순환구조가 숨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주택담보대출은 개인의 수년간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이므로 집을 되파는 경우를 제외하곤 일시상환이 쉽지 않고, 그래서 원금을 분할해 매달 상환해 나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매월 원금을 갚다 보면 점차 대출비율(LTV)이 줄어들어 주택가격하락에 의한 시장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매달 돌아오는 원리금상환 부담 때문에 실수요자를 가려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개인입장에서도 강제저축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80%를 넘는 대출비율의 모기지론이 일반화된 미국 등에서 저축률이 낮은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둘째 이처럼 분할상환방식이라면 매월 부담하는 원리금의 규모를 줄여줄 필요가 있으므로 대출기간은 가급적 길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이 20년, 심지어 30년을 넘는 이유는 월부금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개인의 신용리스크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데다 소득수준에 따라 대출비율의 선택폭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장기대출일수록 요즘처럼 금리변동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므로 다분히 고정금리대출이 유리하다.
이 경우 앞서 모 의원의 지적대로 금리 하향 국면에 불리할 수 있는데 이때는 낮은 금리의 타행대출로 갈아탐(refinancing)으로써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반면 변동금리는 금리 상승국면 시 속수무책이라는 점에서 분명 불리하고, 그래서 미국에서도 금리 하향 국면에 대출이 집중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다만 고정금리하에서의 금리변동리스크는 대출은행이 떠안게 되므로 변동금리보다 이자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나라가 복지차원에서 주택대출시장에 개입해왔으나, 대출채권의 증권화기법과 리스크 헤지수단이 발달하면서부터 시장기능에 맡기는 경향이 대세였고, 그래서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도 서둘러 모기지론 및 MBS시장 육성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은 “분할상환>장기대출>고정금리”(분·장·고)라는 3가지 원칙에 충실할 때 견실한 법으로 마치 어느 하나만 부실해도 비틀거리는 세발자전거와 같다 하겠다.
최근 美 모기지사태의 이면에는 바로 이 기본 틀을 벗어나 변동금리나 일시상환대출이 급증한 데 기인한 바 크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그간 담보가치에 안주해 이자수입이 큰 만기일시상환, 3년 이내의 단기, CD금리에 연동하는 변동금리대출에 집중함으로써 스스로 리스크를 키워온 측면이 크다.
소비자들도 단순 계산으로 금리가 낮다거나 이자만 내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월 부담이 적다고 유혹하는 은행마케팅에 부화뇌동해왔고, 저금리로 캐피탈게인을 노리는 가수요까지 합세했다.
이러한 위험을 차단하고자 주택금융공사를 설립, 실수요자 중심의 분할상환-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해왔지만 은행들은 잘되는 판에 공사가 끼어든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일관해왔고, 정부도 위기가 도래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장개입을 주저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는 느낌이다.
제2의 IMF사태가 왔다고 하는 요즘 글로벌 자금경색으로 모든 경제주체가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라는 그 흔한 단일상품이 세계경제를 이토록 파국으로 내몰았다는 점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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