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대홍수 당시 끊어진 다리 모습 |
3일간 내린 비의 양은 최대 673㎜. 국내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량을 기록한 집중 폭우였다.당시 폭우는 기상학자들이 800년 빈도의 집중호우라고 분석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 비로 금강의 물줄기가 범람했고, 지역에서 사상 최대의 대홍수가 발생했다.
부여와 공주, 서천 등 금강하류 지역 일대가 온통 범람한 물줄기에 휩쓸렸다. 역대 최대의 물난리였다.
거대한 물줄기가 휩쓸고 간 지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 대홍수로 충남지역에서 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실종자 10명, 부상자 266명 등 모두 500명 가까운 인명피해를 입었다. 재산피해액도 2900억원에 달했다. 피해규모로도 역대 최대였다.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부여 지역에서만도 40여 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는 등 1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논밭과 주택 등 5300여㏊가 물에 잠겼다.
금강하류지역은 이전에도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질 때마다 상습 침수 피해를 입어왔다.
1979년 6월, 3일간 쏟아진 집중호우에 의해 서천군 일대에서 방조제가 무너져 터져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등 지속적인 호우 피해가 있어왔다.
특히 부여 일대에는 호우로 인한 피해가 많았던 지역 중 하나다. 이 지역은서는 1971년에도 이틀 간 쏟아진 330여㎜의 폭우로 하천 제방이 터지면서 수십 채의 농가가 물줄기에 휩쓸리고, 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치수 및 방제 대책의 실패였다. 그 이전에 제대로된 치수 및 방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차원에서 1987년의 금강 대홍수는 각종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방재 대책이 마련 필요성이 대두되는 계기가 된다. 예상치 못한 폭우와 막대한 피해로 인해 이 당시 정부 역시 방재종합대책중장기계획이 수립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금강하류지역의 호우 피해 문제는 온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1995년 대청댐 유역과 금강 본류 유역 등에 내린 집중호우로 금강하류지역의 저지대가 또 다시 침수되고, 50여 명의 사상자와 2300억원 규모의 재산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1987년 금강대홍수 이후 20여년,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예측불허의 자연재해 발생과 규모의 대형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어 국가차원의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치수 및 방재 대책의 마련이 요구되는 실정이다./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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