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교육팀장 |
늦은 가을입니다. 더 높고 맑은 하늘과 구름. 가을은 사람의 기분까지 들뜨게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는 은행잎과 형형색색의 단풍은 억지여유라도 갖게 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서 가을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L형.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녁을 보았는지요. 누렇게 익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벼를 보며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우리네 아버지 얼굴을 보셨는지요. 검게 그을린 모습에서 잔잔한 미소가 흐러던가요? 아버지의 인자함은 어디에 감춰두고 성난 모습만 보이지 않던가요? 가을걷이를 끝내놓고 모처럼만에 곱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가을산을 찾은 우리네 어머니를 한 번 만나 보셨는지요. 곱디 고운 모습은 어디가고 어느덧 잔주름만 패인 얼굴에서 무엇을 생각나게 하던가요. 마냥 재미있어 하던가요? 현실입니다. 이게 제 눈에 비친 늦가을의 참모습입니다.
L형.
가을비가 내립니다. 이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겠죠. 벌써부터 다가오는 겨울이 걱정입니다. 끼니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살추위는 어떻게 견뎌낼 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훌륭하신 위정자들님들에게 쌀직불금까지 다뺏기고도 어디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은 그래서 생가슴만 태우고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자식들은 어버지의 모습에 이를 악물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올해도 취업백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모님의 어깨를 더욱 더 짓누릅니다.
L형.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살기가 퍽퍽하다는 소리가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심지어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마도 전부 다 문제겠죠.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말입니다. 힘있는 자는 약한자를 무참히 밟아야하고, 재산을 가진 자는 없는 자에게서 전부를 뺏어야 하는 잘못된 사회시스템도 한 몫 하겠죠. 물론 교육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겠죠. 오죽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싫어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할까요. 그나마 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서 보내는게 아니라 빚을 내서라도 보내겠다는 학부모들의 생각이 사치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L형.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교육에 신경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교육제도만 해도 그렇잖아요. 해방이후 지금까지 몇 차례나 제도를 개선했는지 혹 기억하시나요. 놀라지 마십시오. 벌써 7번이나 바꿨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를 주고 있지만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맴맴’밖에 하지 못한 꼴입니다. 아마도 또 바끼겠지요. 아니 바뀔 것입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움직이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보니 바뀌고도 남을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L형.
위정자들께서는 아직도 문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나 봅니다. 하긴 상위 5%의 생활을 하고 계신 어르신(?)들이 무엇이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바로잡으면 도리어 뭔 재미로 세상을 사나 걱정해야 할 판인데 안 그렇습니까? 하긴 선진국중 상위 5%가 이끌어가고 있는 나라가 있긴 한데 설마 그 나라를 따라한다고 설레발을 치지 않으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적어도 그 나라는 신뢰와 믿음,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확실한 차이점을 알면 말입니다.
L형.
뜬금없이 이렇게 소식을 전해 가을의 맛을 망쳐 놓았다고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사실 무르익어 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어 추억거리를 공유하려고 했는데 그만 식상함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밝은 표정의 사람들보다 어둡고 칙칙한 표정의 사람들이 더 많아졌기에 푸념을 널어 놓았습니다. 문득 어느 광고카피가 생각납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 언젠가 가을의 여유를 생각대로 해도 되겠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지 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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