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표 에버홈대표ㆍ대덕대학 겸임교수 |
종족적 특징들은 거의 무한한 범위의 단계와 편차 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여러 개의 종족집단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혈통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수 혈통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오랜 세월 동안 단일 혈통을 유지해온 것으로 믿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순수 혈통의 신화를 신봉하는 이유는 과거의 도래인(국제결혼)들이 외모 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쉽게 동화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도래인(귀화인)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동화시켜 우리와 같은 문화권으로 흡수했던 것이다.
한국사회가 단일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공동체 생활을 이어 왔고 외침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단일민족”관념이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단군을 신화적 정점으로 삼는 한국의 순혈주의 또는 단일민족론은 구한말 외세의 침략과 일제 강점기 시대에 단절된 국가 정체성의 회복, 분단국가로서 북한과 다른 정체성 확립의 필요에 의한 유신시대의 민족주의 강조로 인해 국수주의적 민족의 정체성이 강화 되었다. 단일민족 의식의 강조는 민족의 단결과 결집력을 강화시켜 일제식민 통치에의 항거와 독립의지를 키웠으며 한반도 분단 후엔 민족통일에 대한 좀더 강렬한 열망을 갖게 만들었고, 근대화를 이룩한 원동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론은 시대적 상황의 위정자들의 정치논리 속에 태어난 과학적 근거 없는 환상일 뿐인 것이다.
우리민족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우리 땅에서 무슨 일을 해냈을까? 단군이래 5천년 동안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일까? 역사의 기록은 솔직히 이를 가려내기에는 미비하다.그러나 우리민족은 “잡탕”이라 할 만큼 많은 외래집단의 혼성체로, 한반도라는 살기 좋은 큰 그릇 속에 서로를 녹여가며 일체감을 이뤄낸 자랑스러운 민족 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대륙에서 이곳저곳의 난을 피해 혹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수많은 집단들은 귀화한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미워하지 않고 서로를 껴안아 일심동체의 문화적 구심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 냈다. 이른바 귀화인이라 불린 새로운 집단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고 우리땅의 역사를 새로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베트남의 왕족 이용상, 이성계의 오른팔이었던 여진족의 이지란 장군, 일본의 무장사야가(김충선)등은 한반도에서 다시 시작한 인생을 통해 그 혈통을 뿌리내리고,성공한 귀화인으로 이름을 남겼다.귀화인은 결국 우리 자신의 얼굴인 것이다. 우리가 귀화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결국 조금 늦게 한반도로 들어왔을 뿐 귀화인은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다문족, 다문화사회를 현실로 인정하고 피부색, 귀화성씨, 국적 때문에 차별 받지 않는 사회통합을 유지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단일민족 운운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민족 국가임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국민적 합의와 수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외국인 100만명 시대, 국제결혼을 통한 순수 다문화가족 50만명을 넘어선 글로벌 다문화사회를 맞이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닫힌 정체성이 아닌 열린 정체성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