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버드나무 없는 버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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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버드나무 없는 버드내

  • 승인 2008-10-22 00:00
  • 신문게재 2008-10-23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고자(告子)는, 사람의 본성은 버드나무 같은 것이고 의로움은 그 버드나무로 만든 술잔과 같다고 했다. “먹고 마시고 남녀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사람의 사람됨은 타고나지 않고 가르치거나 훈련시켜야 가능하다는 고자의 입장을 가장 못마땅히 여긴 인물은?


당연히 맹자다. “그대는 버드나무의 본성을 따라서 나무술잔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버드나무의 본성을 해쳐서 나무술잔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맹자는 버드나무에는 이미 술잔이 될 잠재적 본능이 있다며 자신의 성선설을 옹호한다. 고자 입장에서는 산 버드나무가 죽은 나무술잔과 같다는 맹자의 논법은 문제 투성이다.

엉뚱하게도, 유등천 좌안도로(태평교∼버드내교) 공사를 시작하면서 밑동이 잘린 버드나무를 보며 튀어나온 배고픈 철학이다. 유등천의 본성과 같은 버드나무를 벤 것에 대해, 1600만원이면 버드나무 40그루를 심는데 1억2000만원이나 들여 이식할 게 뭐냐면 할 말은 없다. 경제성 때문이라는 해명에 일리는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심고 뒤에서 벤다는 것이 왠지 술어의 진술성이 불성실한 언어로 들리는 걸 어쩌겠는가. 잘려나간 버드나무는 나무그릇이나 땔감이 됐을지 알지 못하나 시민 가슴마다에 박힌 상징성은 어찌할 텐가. 아깝고 아쉽다. 개인적으로 한빛수목원에 배롱나무를 ‘내 나무’로 헌수한 것도 그런 일종의 화인(火印) 때문이다. 격렬했던 태풍의 흔적을 간직한 배롱나무를 환생시키고 싶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헌수(獻樹) 경쟁으로 비치지 않을까 은근히 조심스럽다.

대전시 신청사를 개청했을 때를 기억한다. 어떤 인사가 자신의 본가 안마당의 100년생 모과나무, 50년생 은행나무를 청사 남쪽 뜰에 옮겨 심고 유래비까지 세웠다. 나무의 무덤 같았다. 6년 전 산불로, 아버지 손잡고 가꿔 왔던 아름드리 거목들을 잃고 나무는 어떻게 심고 가꾸느냐가 중요하구나를 절감하고 있다. 요즘 둔산의 어느 네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도로 복판을 파고 심은 소나무를 보면 본성을 따른 것인지 해친 것인지 아리송해진다. 나무가 아무리 현대 문명의 묘약일지라도 냉철한 이성으로 공익을 이뤄내야 옳겠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래서 나무 심기에는 뚝딱 해치우는 한국식 공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벌컥벌컥 마셔대는 커피와 낙조에 물든 잎을 완상하며 음미하는 커피 중 어느 쪽이 향긋한가. 속도 조절을 하며 납세자인 시민의 소리에도 귀기울여 한 그루라도 시민과 보다 친숙한 나무로 만들어야지, 성급히 도로를 파고 나무를 심은들 바람 깃들 만한 곳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본성이 빠져 곁길로 새서는 안 된다.

제주도에 유도화길이, 영동에 감나무길이 있다면 유등천변에는 버드나무길이 있어야 한다. 버드나무 없이 버드내가 버드내이고 유등천이 유등천인가. 아,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었나? 붕어 안에도 붕어는 없다. 버드나무가 잘린 유등천은 고자와 맹자의 동양철학적 주제에 이어 인문학적 주제를 생각하게 한다. 어쨌거나 버드나무는 맹자와 고자도 못 바꾸는 유등천의 본성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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