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규희씨(70·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은 “사대부가에서는 집을 지을 때 주인이 후손들에게 집이 훼손되었을 때 사용하라는 의미로 천장에 은자를 넣어 두었다”며 “동춘당도 집주인이 변란 등으로 건물이 훼손되었을 때 후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은자 21 냥을 천장 안에 넣어 두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또 “1990년대 대대적으로 보수한 흥선대원군의 사가 운현궁에서도 동춘당과 같은 용도의 돈이 나왔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에 대해 운현궁 관리를 맡고 있는 예문관 현유공 소장은 "지난 1993~1996년 운현궁 보수 복원공사 때 당백전 10개가 나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백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다시 지어 왕위를 세우기 위해서 흥선대원군이 정권이 1866년(고종 3)부터 이듬해까지 발행한 화폐다.
▲ 보물 209호 동춘당 대청 눈썹천장에 은돈 21냥을 보관하던 곳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은자를 보관했다는 눈썹천장 모습. |
이 씨가 은돈이 보관되어 있던 곳으로 지목한 곳은 동춘당 대청의 눈썹천장인데 눈썹천장은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으로 추녀의 뒷몸과 선자(扇子)의 짜임을 가리기 위하여 퇴칸에 따로 만드는 천장을 말한다.
이 씨는 “눈썹천장 안에 보관돼 있던 은돈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동춘당을 현재 위치로 옮기는 과정에서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사실은 동춘당 선생의 후손들도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향토사학자 이규희 씨 |
그러나 이 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한남대 한필원 교수(건축학과)는 "눈썹천장은 서까래가 모여 시각적으로 지저분한 부분을 가리기 위한 곳이지 이 곳에 돈을 보관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한편 한밭문화마당 임헌기 대표는 “집을 지을 때 후세를 위해 돈을 넣어두는 것은 당시 사대부가에서는 흔한 일로 동춘당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돈은 물론 그릇과 토기 등 다양한 물건들을 지붕과 천장 사이인 개판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또 “동춘당이 보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건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동춘당 선생이 태어나 생활한 곳으로서 그의 선비정신을 기리며 안채와 별채, 사랑채, 별묘, 가묘 등이 세트로 남아 있어 조선 중기 이후 충청지방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과 기술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